[여름 기독서적 특집] 수평선 너머로 떠나고 싶은 여름 순례길… 배낭 속 종이책엔 값진 노스탤지어가
입력 2012-07-11 18:21
기호학자이자 ‘장미의 이름’을 쓴 프랑스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80)는 5만여 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장서는 작은 도서관 수준이다. 가히 책 애호가, 혹은 수집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디지털 시대에 그 많은 책들을 소장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언젠가 꼭 읽거나 참고할 때 필요하다 싶어 보관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에코 “인터넷은 아주 멍청한 神”
킨들이나 아이패드에 수만 권의 책을 넣어 볼 수 있는 첨단 디지털 시대에 ‘에코의 장서’는 시대착오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왠지 5만권의 장서를 소유한 에코는 ‘중후장대(重厚長大)’한 학자이자 작가로 여겨진다.
‘경박단소’(輕薄短小)는 이 시대를 설명하는 키워드다. 잘 팔리는 상품이 지니는 가볍고, 얇고, 짧고, 작은 특성이라는 경박단소 현상이 도처에 퍼져 있다. 이에 대칭되는 개념이 중후장대다. 기초소재 산업이나 조선, 철강업 등이 대표적이다. 건강한 산업 구조를 위해서는 경박단소와 중후장대형이 적절한 비율로 어우러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책은 ‘중후장대’한 믿음·삶 선물
그러나 갈수록 중후장대는 사라지고 경박단소만이 판을 치고 있는 듯 하다. 교회 강단에서도 가볍고 얇은 메시지가 청중의 호응을 받고 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설교는 사라지고 만담만 난무하고 있다”고 독설을 퍼붓는 목회자도 있다. 물론 시대가 변하고 있는데 경박단소형을 비판만 하는 것은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하는 우둔함의 소치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경박단소의 폐해는 크다. 일단 너무 가볍다. 자극적이며 지속적이지 않다. 유장한 인간미가 결여돼 있다.
인터넷은 경박단소를 부추기는 대표적인 문명의 이기. 미시간대 의대 교수로 활발한 블로거 활동을 하는 브루스 프리드먼은 “인터넷에서 수많은 단문 자료들을 훑다 보니 생각하는 것이 ‘스타카토’형이 됐다”고 개탄했다. 스타카토(staccato)는 짧게 끊어서 연주하는 기법이다.
요즘 목회자들도 인터넷에 길들여져 있다. 검색창을 누르면 직접 경험하지 못한 수많은 사실들을 발견해서 ‘내것처럼’ 사용할 수 있다. 설교문을 만들기 위해 고뇌하기보다 먼저 인터넷에 들어가는 목회자도 있다. 사실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정보는 선한 것인지, 아니면 악한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그래서 움베르토 에코는 “인터넷은 신이다. 하지만 아주 멍청한 신이다”라고 질타하고 있다.
올 여름휴가엔 꼭 한권의 책을
미국의 기술문명 평론가인 니컬러스 카는 인터넷의 맹점을 비판하면서 ‘팬케이크(pancake) 인간’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인터넷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인간들은 응축된 사유는 사라진 얇고 납작한 인간, 즉 팬케이크형 인간으로 전락할 것이란 경고였다.
경박단소를 극복하고 중후장대 하기 위해서는 책을 읽어야 한다.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 세계에서 먼저 잘 놀아야 한다. 이번 여름에는 책과 함께 떠나자. 팬케이크형 인간이 아니라 풋풋한 인간미 절절하게 넘치는 중후장대한 아날로그적인 휴가를 즐겨보자. 또한 오늘 집 안 서재에 쌓여 있는 책을 꺼내 읽어보자. 도서관도 방문하고, 동네 서점도 가서 인터넷 서점보다 조금 비싸더라도 한 두 권의 책을 사자. 책을 살 때, 우리는 추억도 산다. 종이 책에는 값진 노스탤지어가 있다.
이태형 선임기자 t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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