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음식’은 타락죽… 정병설 서울대 교수 ‘승정원일기’ 분석

입력 2012-07-10 19:07


조선 왕들에게 최고 인기 메뉴는 무엇이었을까. 미음과 우유를 섞어 만든 타락죽이다. 이 영양식은 영조와 숙종을 비롯해 여러 임금들이 가장 즐긴 음식이다. 이는 정병설 서울대 국문과 교수가 ‘승정원일기’를 분석해 밝힌 것이다. 승정원은 조선시대 국왕의 비서기관이다. 정 교수 등은 궁중음식과 관련된 고문헌 연구 결과를 11일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최 ‘인문학자가 차린 조선왕실의 식탁’이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에서 발표한다.

◇영조의 고추장 사랑=18세기 중반 무려 53년을 통치했던 영조(1694∼1776)는 82세까지 장수했다. 하지만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재위기간 소화기능이 좋지 않아 음식 복은 누리지 못했다. 이 때문에 소화하기 쉬우면서 단백질과 지방을 섭취할 수 있는 타락죽을 즐겼다고 한다. 여름철 입맛이 없을 때엔 보리밥을 물에 말아 후루룩 먹었다.

“송이, 생전복, 새끼 꿩, 고추장은 네 가지 별미라, 이것들 덕분에 잘 먹었다.” 입이 짧아 고생한 영조가 어느 날 한 말이다. 영조를 사로잡은 진미 중 눈에 띄는 게 고추장이다. 사내대장부가 먹는 음식으로는 채신없다며 떡은 멀리했던 영조였지만 고추장을 먹을 때는 체통 같은 건 따지지 않았다. 궁중에서 만든 것보다 특히 궁중 밖 사헌부 관료 조종부 집 고추장을 좋아했다.

정 교수는 “영조의 까다로운 식성은 그의 초상화가 보여주는 대로 비쩍 마른 몸에 매부리코,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운 인상을 연상시킨다”고 했다. 그러면서 왕위에 오를 수 없는 처지였으나 노론을 등에 업고 이복형 경종을 몰아내고 등극한 불안했던 처지와 관련지었다.

◇어디에서 만들었을까=왕의 음식을 담당하는 기관은 사옹원이다. 그러나 식기 제조 등 음식과 관련된 사항을 전체적으로 관장했을 뿐 실제 요리와 음식 진어(進御)는 내시부의 내관과 내명부의 궁녀들이 맡았다. 내관 가운데서도 특히 ‘섬니내관’이 진상한 음식 재료를 검수하고 요리를 맛보았다. 아무리 고생해 만든 음식이라도 그가 퇴짜 놓으면 헛일이라서 섬니내관은 막강 권한을 누렸다.

음식은 어느 곳에서 만들어졌을까. 1826년 그려진 ‘동궐도’를 보면 궁궐 곳곳에 주방이 있었다. 사옹원에 소속된 공상청에서 식사 재료를 올리면 사옹원에서 1차 검수를 하고, 내관들이 2차 검수를 한다. 왕의 음식 안전은 국가 존망과 관련이 있었으므로 이중삼중의 검시절차가 있었던 것이다. 이어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면 외주방에선 임금, 내주방에서는 왕비를 위해 음식을 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흔히 왕의 요리사는 ‘대령숙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승정원일기에는 유사한 직명조차 없다. 수라간 으뜸 궁녀는 ‘수라간차지상궁’으로 불렸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