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오경아] 도토리가 둥근 이유는
입력 2012-07-10 18:41
친구들과 여행을 떠난 작은 아이와 며칠째 연락이 되질 않는다. 나는 아이들이 눈앞에서 사라지면 애를 태우며 연락에 목을 맨다. 그런데 내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싫은 작은 녀석은 뻔뻔하게 “충전기를 깜빡 잊었어. 그리고 엄마, 무슨 일 있으면 엄마한테 먼저 연락이 가게 돼 있어요. 진정 좀 하세요”라고 한다. 요즘 말로 독하게 쿨하다. 못된 것, 부모 속도 모르고! 따져 생각하면 학교여행 중이니 그리 안절부절못할 일도, 설령 일이 있다 해도 수시로 전화한다고 해결될 상황도 아니다. 믿고 기다려도 될 텐데 결국 감정에 휩싸여 아이 여행길을 툭툭 끊어놓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10년 전 살던 경기도 고양시 집 마당에 남편이 재미삼아 새집을 만들어 꽃사과나무 위에 올려놓았다. 거기에 덜컥 박새 부부가 알을 낳았다. 알에서 깨어난 새끼 박새를 훔쳐보는 재미가 대단했다. 모정은 새도 똑같은지 날개 쉴 틈도 없이 지극정성으로 먹이를 날랐다. 그런데 이렇게 키운 새끼들이 날개를 퍼덕일 정도 되었을 어느 맑은 날. 어미 새와 박새 다섯 마리가 나란히 가지에 앉아 있었다. 어미 새가 이상하게 날아갔다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사이 우리는 그게 녀석들의 첫 비행연습이란 걸 알아차렸다. 몇 번의 연습 끝에 박새 새끼들이 상공으로 첫 비행을 하는 순간! 숨죽여 지켜보던 우리도 소리 없는 환호성을 질렀다. 문제는 그 후였다. 첫 비행에 성공한 다섯 마리의 박새가 그대로 둥지를 떠나 돌아오질 않았다. 그 길로 부모를 떠나 각자의 갈 길을 찾아간 셈이었다. 이런 허망하고 쿨한 독립을 봤나!
가을이면 도토리가 상수리나무 밑에 떨어진다. 도토리가 둥근 이유는 잘 굴러가라는 뜻이고 되도록 부모 그늘 밑을 벗어나 멀리 가라는 의미다. 부모 그늘에 있다가는 어린 도토리가 싹을 틔우기 어려우니 상수리나무는 다 자란 도토리를 떨어뜨릴 때 나에게서 좀 더 멀리 가라고 내친다. 그렇게 품에서 떨어져나간 도토리는 비탈길을 굴러 부모와 이별한다.
생각해보면 인간만이 참 오랜 세월 자식을 끼고, 간섭을 하고, 그들의 삶을 좌지우지한다. 그런데 부모 품에 너무 오래 머물고 있는 자식치고 잘 되는 경우는 많이 보지 못했다. 부모 품이 아무리 포근해도 그늘 밑에서는 맘껏 햇볕, 바람을 맞으며 도토리가 자랄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관계도 그러하지 않을까? 좀 더 쿨하게 떠나 보내주자. 사랑하는 내 자식들을 위해!
오경아(가든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