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배병우] 한·미 동맹이 족쇄 될 때
입력 2012-07-10 18:40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현재 한·미 관계를 설명할 때 우리 외교관들이 자주 쓰는 표현이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도 언론브리핑에서 “역사상 어느 때보다 한·미 관계가 견고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클린턴 장관뿐 아니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한국·한국인에 대한 호감도 널리 알려져 있다. 서로를 ‘친구’로 꼽는 오바마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의 인간적 친밀함은 결코 과장이 아니라고 한다.
실제 최근 한국과 미국 정부가 어느 이슈에서든 이견을 드러낸 예를 찾기 어렵다. ‘이심전심(以心傳心)’ 수준이라고 할까. 다른 것은 몰라도 한·미동맹을 강화하겠다는 대통령 공약만큼은 이번 정부가 충실히 이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취임 초 정치·경제·사회 등 전 범위를 아우르는 ‘21세기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한·미관계를 격상하겠다고 한 바 있다.
하지만 한·미동맹의 강화라는 공약이 ‘한반도·동북아 안정’이나 ‘한반도 평화 구축’ 등의 목표보다 더 상위 목표가 될 수는 없다. 한반도 안정에 이바지하는 하위 목표이거나 수단에 그쳐야 하는 게 맞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둘러싼 파문을 보노라면 수단에 머물러야 할 ‘한·미동맹의 강화’를 최상위 국가전략 목표로 격상한 것이 자승자박의 결과를 가져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청와대 외교안보라인이 밀실 처리를 해서라도 협정을 통과시키려 한 것이다. 독도와 종군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의 ‘도발’이 계속돼 국민 감정이 계속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가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시도에도 불구하고 계속 북한을 감싸는 중국을 압박하는 카드로 이 협정을 사용하려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렇더라도 청와대 외교안보라인이 대선이 눈앞에 다가왔고, 일본과의 군사협력이라는 사안의 폭발성을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현실감각을 잃은 것을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보다는 미국과의 동맹 강화가 대통령도 늘 강조하는 안보목표가 되다 보니 미국의 거듭되는 요구에 반대하지 못하고 관성적으로 끌려들어갔다는 게 더욱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반응은 침묵에 가깝다. 국무부 당국자들은 “한·일 양국간 문제이므로 그쪽에 물어보라”고 한다. 하지만 미국이 일본·한국과 3국간 군사협력 강화를 추구해 온 역사를 아는 이들은 미국의 당혹감과 허탈감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한다.
워싱턴DC 소재 싱크탱크의 연구원은 “이 소식을 들은 미 정책 당국자들의 첫 반응은 ‘어떻게 한국 같은 국제적 위상을 가진 나라에서 협정 체결 1시간 전에 취소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느냐,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고 했다.
‘허탈감’ 부분은 미국이 얼마나 오랫동안 이 협정에 공을 들여왔는지 알아야 이해된다. 미국이 한·일 군사정보보호 및 군수지원 협정 체결을 추진한 것은 1∼2년 전부터가 아니다. 노무현 정부 때도 협정 체결을 요구했다고 하니 최소한 5년 이상 된 사안이다. 이런 공든 탑이 이번 사태로 무너졌고, 복구도 쉽지 않아 보인다.
‘6월 시한설’에서 보듯 미국이 지난 달까지 협정 체결을 마무리하려 한 것은 민주당 후보는 물론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집권하더라도 ‘지금보다 좋은 한·미 관계’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말도 나온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