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선출마 선언] 평범한 삶 부러워하고 교사 꿈꿨던 여자
입력 2012-07-10 22:09
부모를 차례로 총탄에 잃은 비운의 대통령 딸. 재밌는 남자를 좋아하고, 비빔밥을 잘 만들며 2006년 5·31지방선거 유세 도중 당한 테러 부위를 성형하고 싶다는 여자. 스타킹에 구멍이 난 걸 “빵꾸났다”고 표현하고 구멍난 걸 모르고 돌아다닌 걸 무척 창피해하는 여자. 거울을 보면 ‘나도 나이를 먹어가는구나’하고 생각하며 화가 나면 토라져 한동안 말을 안 한다는 여자. 정치인의 길이 아니었다면 교사나 교수가 되고 싶었다는 여자. 가족과 함께 산책하는 사람을 보면 제일 부럽고 그래서 다시 태어난다면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는 게 소원이라는 여자.
그 여자 ‘박근혜’가 10일 두 번째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나는 나라와 결혼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혀온 만큼 첫 여성 대통령이 되려는 그녀 인생과 대한민국의 역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은 1952년 2월 박정희와 육영수 사이의 2녀1남 중 장녀로 대구에서 태어났다. 9살이던 61년 박정희 소장은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고 63년 5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어릴 때부터 청와대에서 자라온 박 전 위원장은 자연스레 조국, 애국, 위민, 통치 등의 단어에 익숙해졌다. 전공을 이공계인 서강대 전자공학과(70학번)를 선택한 것도 수출을 늘리려면 전자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었다.
비운의 첫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은 22살 때다. 74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육 여사가 간첩 문세광의 총탄에 쓰러진 것이다. 박 전 위원장은 졸지에 퍼스트레이디 역할에 나섰고 국정을 아주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기회를 가졌다. 5년 뒤에는 79년 10·26사태로 아버지마저 잃는다. 아버지 서거 소식을 듣고 “전방은 괜찮냐”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 청와대를 떠나 18년을 은둔 아닌 은둔 생활을 했다. 다만 육영재단 이사장, 정수장학회 이사장 등을 지내면서 선친이 남겨 놓은 일을 챙겼다.
그러다 46세 때인 98년 한나라당에 영입돼 대구 달성의 15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그녀의 정치 DNA는 ‘강단’ 그 자체였다. 2001년 이회창 총재에 반발해 당 개혁안을 요구하며 탈당, ‘미래연합’을 창당했고 2002년 나홀로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남북 현안을 협의하기도 했다.
2004년 3월 한나라당 대표를 맡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침몰 직전이던 당을 구하기도 했다. 2007년 17대 대선에 나섰으나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석패했고 5년간 절치부심해 왔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