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애란 (2) 경호경찰 “신변 위험하니 조선족이라고 하세요”

입력 2012-07-10 21:17


첫 출근. 지하철을 타고 가다 버스로 갈아타고, 2시간가량 가야 하는 강남 호텔이었다. 쌩쌩 달리는 자동차, 울긋불긋한 간판들, 사람들은 왜 그렇게 많은지. 정말이지 모든 것이 충격으로 머리가 ‘띵’하고 아팠다.

호텔청소부 일은 하루에 방 10개를 청소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10개쯤이야 어렵겠나” 하고 생각했지만 실제 일을 해보니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신변 보호(?)를 위해 따라왔던 경찰관은 내게 “북한에서 왔다고 하면 위험하니 조선족이라고 말하라”고 했다. 경찰관 때문인지 호텔 사장은 직원들에게 나를 조선족이라고 소개했다.

호텔 사장님 덕에 졸지에 난 조선족이 됐다. 중국에서 14일 정도 머물렀고 그것도 혼자 있던 것이 아니라 안내자의 도움을 받아 숨어 지냈기 때문에 중국 상황은 물론, 중국말 한마디도 아는 것이 없었다. 이렇게 중국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는데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중국에 대해 이것저것 물을 땐 정말 답답했다. 제발 사람들이 중국에 대해 나에 대해 묻지 말았으면 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과 마주하는 것이 싫었다. 하루 종일 혼자 일하고 혼자 밥 먹고, 너무나 외로웠다.

호텔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50대 이상이었다. 내가 34살로 가장 어렸다. 그래서인지 그곳 사람들은 나를 ‘미스 리’라고 불렀다. 고참 직원은 화장실 청소법을 가르쳐주었다. 변기 속까지 손을 밀어 넣어 비누로 깨끗이 닦아야 한다고 했다. 화장실 벽과 천장, 바닥까지 모두 비누로 닦아내고 나중에 마른 걸레로 또 닦아내야 물기가 마르면서 생기는 얼룩이 없어진다고 알려줬다. 고참 직원은 화장실 청소부터 잘 배워야 한다고 하면서 자신이 맡은 룸 화장실 청소까지 내게 맡겼다. 그래서 매일 20개 룸을 청소해야만 했다.

하루 종일 허리 펼 새도 없이 땀을 뻘뻘 흘렸다. 맡은 일을 다 하려면 시간이 모자랐다. 오후 7시쯤 퇴근이 가능했고, 집에 도착하면 9시였다. 허리를 펼 시간이 있다면 유일하게 밥 먹는 시간이었다. 하루 종일 사람 얼굴 하나 볼 수 없는 호텔의 빈 방들을 돌며 변기를 닦으면서 ‘내가 여길 왜 왔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힘든 곳인 줄 알았다면 오지 말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북한에서 출신 성분이 나빠서 갈 곳이 없는 나였지만 이렇게 화장실 청소까지 한 적은 없었다. 목숨 걸고 찾아온 남한 땅. 고작 하루 종일 변기를 붙잡고 청소하는 일이라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당시 한 달 월급은 50만원. 물가가 어느 정도인지 몰랐기 때문에 50만원이라는 돈이 얼마나 큰 것인지 잘 몰랐다. 북한에서 받았던 월급 145원에 비하면 그저 훨씬 많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생활하다 보니 집 관리비와 월세 등을 합치면 20만원가량 됐고 교통비와 식비 등을 합하면 10만원이 더 들었다. 그리고 아이 우유 값과 기저귀 값을 합하니 밥 먹을 돈은 물론, 하루 종일 아이를 맡긴 어머니한테 용돈도 드릴 수 없었다.

호텔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적은 월급으로 생활할까 궁금했다.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럭저럭 지내는데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호텔은 월급보다 팁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귀띔해 주었다. 그런데 팁을 올려놓는 침실 정리는 고참 직원이 들어가니 당연히 팁 구경을 할 수 없었다.

팁이 얼마가 되는지는 모르지만 여기서 계속 일하다간 아들 공부시키기도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살아갈까’. 스트레스가 겹치다보니 눈에 종기가 났다. 병원에서 고름을 빼내는 수술을 하느라 결근을 해야 했고 나는 최소 100만원은 받아야 생활도 하고 저축도 조금은 할 수 있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100만원 정도 받는 직장을 다시 알아 봐야 한다고 여겼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