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의 시편]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입력 2012-07-10 18:13


며칠 전 딸과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란 영화를 보았다. 개봉하는 날이었는데 꽤 관객이 많았다. 만화 같은 영화라 생각했는데 관객이 예상보다 많아 놀랐다. 만화 같은 영화가 어디 이뿐인가. ‘슈퍼맨’도 있고 다시 돌아온 ‘슈퍼맨 리턴즈’도 있다. 진짜 만화 ‘독수리 오형제’도 있다. 왜 이런 만화 같은 영화, 현실에서 불가능한 스토리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신나 하는지, 심리적으로 분석하고 싶은 직업병이 발동했다.

초인적 힘을 가진 누군가가 나타나 첨단 정보력과 무기를 지닌 경찰도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해낸다. 속이 시원하다. 분명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답답한 마음을 뚫어 주는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 이것이 ‘메시아니즘’이다. 구세주가 필요한 것이다. 못된 자들이 힘으로 착한 사람을 괴롭히고 그들이 더 성공한 듯 보이는 현실을 바라볼 때면 나도 속을 끓이며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을 꿈꾸곤 한다. 그들이 가진 능력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혼내주고 싶다. 그러나 꿈은 꿈일 뿐이고 깨어나면 허탈하다. 그래서 가상현실에서 만족을 찾는 것이다. 그것이 영화고 그런 류의 영화에 담긴 것이 소위 ‘메시아니즘’이다.

그러나 진짜 메시아로 오신 주님이 과연 스파이더맨이나 슈퍼맨처럼 사셨는가. 아니다. 메시아를 기다리던 당시 사람들은 크게 실망했다. 로마제국을 무너뜨리고 다윗 왕국의 영광을 회복시켜주길 기대했지만 그 메시아는 오히려 허약했다. 십자가에 달린 그 메시아께서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런 메시아는 없다. 그것은 너희들의 몫이다.’ 이런 메시지가 아닐까.

비록 하늘을 날고 괴력을 발휘하지 못해도 내 작은 힘으로 얼마든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내 적은 돈, 내 작은 힘 그러나 그것을 나누고 베풀다 보면 어느새 세상은 아름다워질 것이라는 믿음을 키우라는 것이다. 스파이더맨이 악당을 무찌르는 과정에선 엄청난 파괴도 일어난다. 엉뚱한 피해자도 생긴다. 그러나 주님이 맡기신 우리의 메시아 역할에는 피치 못할 파괴란 없다. 내 믿음과 이 소박한 희망만 파괴하지 않는다면 그 아름다운 꿈은 이루어진다.

내가 메시아다. 내가 가진 작은 것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된다. 돈 만원만 쥐어줘도 누군가에게 눈물나도록 고마운 것이고 비타민 한 병으로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기도 한다. 이것이 ‘어메이징 파워’이고 이 세상을 구하기에 충분하다. 단번에 이루고 싶은 허황된 욕망을 깨뜨리고 나의 작은 손을 구체적으로 움직일 때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진다. 뼈만 앙상한 까만 아이의 눈에 맺힌 눈물을 보면서 기꺼이 주머니에 손이 가는 당신은 충분히 살아있는 메시아다.

(산정현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