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일치로 이 시대 ‘사모의 本’ 세워… 노량진교회 림인식 목사 사모 최수복 권사 소천

입력 2012-07-09 21:13


“당신은 하나님이 주신 천사였어요. 마지막으로… 사랑합니다.” 미수(米壽)의 노 목사는 또박 또박 고백했다. 영정 속의 아내가 잔잔한 미소로 화답하는 듯했다. 9일 오전 서울 본동 노량진교회 본당. 지난 6일 소천한 최수복(86·노량진교회 공로·작은 사진) 권사의 장례 예배에서 남편인 림인식(88·노량진교회 원로) 목사의 ‘마지막’ 사랑 고백이 영상으로 흘러나왔다. 아내를 향한 진심어린 고백은 참석자들의 눈가를 촉촉하게 적셨다.

“최 권사님은 4대 목회자 집안의 내조자로, 5남매의 어머니로, 한 교회의 권사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대로 살아오신 분입니다.”

국내 최고령 목회자인 올해 101세의 방지일 영등포교회 원로목사는 설교에서 최 권사의 삶을 신행일치의 본(本)으로 제시했다. 최 권사는 림 목사의 ‘아내’이면서 시아버지인 고 림재수 목사의 ‘며느리’, 장남 림형석(평촌교회)·차남 림형천(잠실교회) 목사의 ‘어머니’로 살아왔다. 림 원로 목사의 할아버지인 고 림준철 목사까지 포함하면 4대째 내려오는 목회자 집안의 내조자로 섬겨온 셈이다.

최 권사가 생전에 유일하게 남긴 자서전적 글 ‘어느 성직자 아내의 독백’(1994)에 따르면 그녀의 인생은 곧 기도의 응답이었다. 이미 믿음이 깊었던 스무살 무렵, 그녀의 기도 내용은 이렇다. “저는 체구도 작고, 목소리도 약하고, 성격도 내성적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 시집가서 밥하고 빨래라도 해주면서 돕게 해주세요.” 아침마다 과수원 사과나무 밑에서 기도하기를 수개월. 6·25 전쟁이 터지기 1년 전쯤, 지금의 남편 림 목사를 만났다.

최 권사는 든든한 믿음의 내조자이기도 했다. 전쟁 피난 시절, 남편 림 목사는 피난짐을 꾸리면서 두꺼운 성경을 가방에 넣을까 말까 망설였다.

그때 최 권사가 소리쳤다. “당신, 성경 없이 살기를 바라는 거예요?” 정신이 번쩍 든 림 목사는 성경책만 넣고 집을 나섰다. 결혼 후 3년이 되도록 자녀가 없자, 최 권사는 철야 금식을 하며 하나님께 서원했다.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그리고 3남 2녀를 얻었다.

최 권사는 남편의 초창기 목회시절, 바느질을 하고 떡을 만들어 팔면서 목회를 도왔다. 교회에서는 주일학교 교사로, 전도 대회가 열릴 때면 혼자서 65명을 전도하기도 했다. 전도사 시절부터 35년 동안 최 권사를 ‘어머니’처럼 모셔온 강신원 노량진교회 원로 목사는 “최 권사님은 한마디로 ‘1등 교인’이자 ‘특등 사모’의 삶을 살다 가신 분”이라고 말했다.

최 권사가 하늘나라로 부르심을 받기 직전, 가족들은 서울 흑석동 중앙대병원 중환자실에 모여 있었다. 림 목사는 호흡이 약해지고 있는 아내의 귀에 대고 찬송가 ‘저 높은 곳을 향하여’를 자장가처럼 불러주었다. 아내에게 바치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마지막 5절을 부를 즈음 최 권사는 잠들 듯이 떠났다. ‘내 주를 따라 올라가 저 높은 곳에 우뚝 서 영원한 복락 누리며 즐거운 노래 부르리….’

박재찬 노석조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