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은 20배↑·中企 대출 1.5%P↓ … 국책은행 금리 정책 ‘파격’
입력 2012-07-09 21:58
국책은행들이 공격적 행보로 시장 쟁탈전에 뛰어들었다. 시중은행의 20배에 이르는 예금금리, 10%대 대출금리 등 파격적 상품을 앞세우고 있다. 과거 금융정책의 ‘들러리’ 역할에 그치거나 전문 분야만 파고들었던 모습과 비교해 180도 달라졌다. 금융시장 ‘맹주’를 자처하던 시중은행은 마땅한 반격 카드를 내놓지 못한 채 당황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국책은행의 변신을 두고 ‘자리 잡기’라고 평가한다. NH농협금융지주 출범, 우리금융 민영화 등으로 이어지는 ‘금융 빅뱅’이 일어난 뒤 재편되는 금융시장에서 자기 몫을 확실히 챙겨두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분석이다.
KDB산업은행은 수시입출금 통장 가운데 최고 금리인 연 2.5% 이자를 제공하는 ‘KDB드림 어카운트’ 통장을 9일 출시했다. 산업은행은 이미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다이렉트 통장’(수시입출금식 통장, 연 3.5% 확정금리)과 함께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기로 했다.
수시입출금 통장은 고객이 언제든 예금을 인출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금 회전주기가 짧다. 이 때문에 시중은행들은 수시입출금 통장의 경우 연 0.1%의 최소 금리만을 책정해왔다. 급여를 이체하거나 예금 한도액을 넘지 않는 경우 등 일부 조건을 충족했을 경우에만 연 2% 안팎의 금리를 제공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아무런 조건 없이 연 2.5% 금리를 제공할 방침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무리해서 지점을 개설하는 것보다 지점 운영비용으로 이자를 주겠다는 것”이라며 “수시입출금 통장에 기준금리(3.25%) 수준을 감안해 금리를 지급하는 것은 해외에서는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시중은행들은 개인 금융에 취약한 산업은행이 ‘시장 교란’ 행위를 펼치고 있다고 반발했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시스템 구축비용과 인건비 등을 감안하면 역마진이 심해 장기간 판매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혹평했다.
IBK기업은행은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금리를 대폭 인하하며 시장 장악력을 높이고 있다. 기업은행은 당장 다음 달부터 중기 대출금리 상한을 연 12.0%에서 10.5%로, 연체대출 최고 금리도 연 13.0%에서 12.0%로 내릴 예정이다. 시중은행의 중기 대출 금리는 연 14∼21%이며 연체기간에 따라 7∼20% 수준의 가산금리가 적용된다.
기업은행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다른 은행에서 기피하던 중기 대출을 대폭 늘려 2008년 17%에 머물던 중기 대출 시장점유율을 지난해 20%대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최근 경제위기가 다시 번지자 이를 재도약의 기회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중소기업에 대한 독보적인 컨설팅과 대출 경험을 바탕으로 잘하는 일을 더 잘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은행의 행보에 시중은행은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순우 우리은행장은 최근 이례적으로 “대출금리를 내리는 게 반드시 중소기업들에 좋은지 모르겠다”고 꼬집기도 했다.
국책은행의 변신에 대한 시장의 우려도 존재한다. 산업은행의 경우 장기적인 계획이 아닌 이벤트성 상품 출시만으로 개인 고객을 유인하는 보여주기 식 정책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있다. 기업은행은 은행 수익성을 외면한다는 지적이 일면서 조준희 행장 취임 이후 2만950원이던 주가가 1만2000원으로 40% 이상 하락했다. 민영화를 앞둔 산업은행과 첫 내부 출신 행장을 맞은 기업은행이 지나치게 금융당국 눈치를 보는게 아니냐는 시중은행의 불만도 적지 않다.
강준구 진삼열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