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성기철] 캠프와 사조직도 검증하자
입력 2012-07-09 18:39
1992년 대선 때 나는 김영삼 민자당 대통령 후보 담당이었다. 매일 아침 서울 상도동 김 후보 자택을 찾아 후보를 만나거나 그의 동정을 살폈다. 곧이어 여의도 중앙당으로 이동해 선거대책위원회 간부들을 취재했다. 비서실장, 정치특보, 경제특보, 정책보좌역, 총무보좌역….
당시 대선 취재의 제1 ‘목표’는 후보의 당선 가능성에 관한 것이었다. 김대중 민주당 후보, 정주영 국민당 후보, 박찬종 신정당 후보와 더불어 4파전을 벌이던 때여서 보수 및 영남 표의 흐름을 정확하게 추적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때문에 상당수 기사가 후보 중심의 정치공학적 접근을 통해 작성됐다. 김영삼 후보의 승리로 선거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대위 간부 대부분이 장·차관과 청와대 수석 등 새 정부 핵심 요직으로 옮겨가는 것을 지켜봤다.
대선 참모, 청와대와 내각 진입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부끄러운 기억 하나. 김영삼 당선자가 청와대 수석 명단을 발표하는데 만나보기는커녕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한 명 포함돼 있었다. 선거를 열심히 도왔으나 비선조직에 몸을 숨기는 바람에 언론 취재망에 걸려들지 않았던 것이다. 신문에 쓸 그의 사진을 구하지 못해 허둥댔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는 임명장도 받지 못하고 낙마했다.
20년 전 경험담을 길게 늘어놓은 것은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 대선 주자들의 캠프 참모와 사조직 참여자들의 됨됨이를 주의 깊게 살펴보자는 취지에서다. 이들은 자기가 미는 주자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청와대나 행정부 요직에 발탁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다. 대선 주자의 국정수행 능력만 검증할 것이 아니라 그를 돕는 참모들의 그것도 함께 검증해야 하는 이유다.
서울대 강원택(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대선에서 우리는 대통령만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각의 각료와 청와대 주요 참모, 심지어 공기업 임원 후보자들을 함께 뽑게 된다”고 말했다(관훈저널 2012년 여름호). 이들이 무능하거나 시대적 흐름에 둔감하거나 도덕적으로 깨끗하지 않다면 대통령의 통치 과정에서 상당한 문제를 낳게 될 것이라는 게 강 교수의 진단이다.
실제로 김영삼 정부에선 나사본과 민주산악회, 김대중 정부에서는 연청, 노무현 정부에선 노사모, 이명박 정부에서는 선진국민연대와 안국포럼 등에 몸담았던 사람들이 국정에 대거 참여했고, 이들의 무능과 비리가 대통령에게 부담으로 작용한 예가 많다. 현 정부에서 사법처리된 최시중 이상득 정두언 박영준 은진수 김해수씨 등이 모두 대선 캠프나 사조직에서 선거를 도왔던 사람들이다. 2007년 대선 때 언론과 유권자 모두 대통령 후보 한 사람을 검증하는 데 집중하다 보니 주변 인물들의 자질과 행동거지를 제대로 체크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자질과 행동거지 감시 필요>
10일 출마 선언을 하는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의 경선 캠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현직 국회의원도 있지만 전직 청와대 수석, 대학교수, 광고 전문가, 기업인 등 참모들의 직업이 다양하다. 민주통합당 유력 주자인 문재인 상임고문의 경우 ‘담쟁이포럼’이란 사조직이 주목받고 있다. 각계 인사 수백명이 참여하고 있어서다. 박 전 위원장이나 문 고문이 집권할 경우 이들 가운데 일부가 요직에 기용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대선 후보를 선택하는데 이들 한사람 한사람의 자질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야권 유력 주자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경우 10월쯤에야 전면에 나설 것으로 예상돼 주변 인물들에 대한 검증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출마 선언을 계속 미루는 건 자신과 참모들의 자질 평가를 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겠다.
성기철 편집국 부국장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