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교과서는 정치 따라 흔들려선 안된다
입력 2012-07-09 18:41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내년부터 바뀌는 중학교 교과서에서 도종환 시인의 시 5편과 산문 2편을 제외하도록 출판사들에 권고했다고 한다. 말이 권고지 삭제하라는 지시나 다름없다. 그간의 관례로 볼 때 이를 무시할 경우 다음달 최종 검정에서 통과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유는 도종환 시인이 지난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됐기 때문에 교육적 중립성 유지를 위해서라고 한다. 교육과정에서 특정 정당이나 종교, 인물들을 선전하거나 정치적 또는 개인적 편견이 담겨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가백년지대계(國家百年之大計)인 교육이 시대적 당파성을 띠거나 이념논리에 좌우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지당한 말이다.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왜곡된 가치관을 심어줘선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문학적 검증을 거쳐 2002년부터 10년 동안 교과서에 실려 있던 글들을 작가가 국회의원이 됐다고 해서 빼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교과서에 실린 도종환 시인의 작품은 국회의원 신분으로 쓴 게 아니다. 작가의 서정성과 창의성이 발현된 문학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정치적 잣대를 들이대려는 발상도 어이가 없다.
1980년대 5공화국 시절 김춘수 시인은 민주정의당 국회의원을 지냈지만 그의 시 ‘꽃’이나 ‘봄’이 교과서에서 삭제되지 않았다. 5공 때도 하지 않았던 일을 하려는 교육과정평가원의 저의가 의심스럽다. 9일 한국작가회의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이자 정치적 탄압”이라며 반발하고 보수적 성향의 문인들까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인터넷에서는 ‘현대판 분서갱유’라는 비아냥이 쏟아지고 있다.
국회의원은 짧게는 4년 하면 그만이지만 교과서는 영속적이어야 한다. 도종환 시인은 이번에 삭제 권고를 받은 ‘흔들리며 피는 꽃’이란 시에서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라고 노래했지만 시대에 따라, 신분에 따라 교과서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