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날 대권 꿈 접은 여야 잠룡 3인] 이재오 “누구를 탓하겠나”

입력 2012-07-09 19:05


여야 잠룡 3명이 오랫동안 키워온 대권의 꿈을 접었다. 새누리당 정몽준 전 대표와 이재오 의원은 완전국민경선제 도입이 끝내 무산되자, 9일 각각 기자회견을 열어 경선 불참을 선언했다. 결국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은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 추대식과 다름없이 치러질 전망이다. 민주통합당 정동영 상임고문도 당내 경선 불출마 기자회견을 했다. 2007년 대선 당시 여당 후보였던 그가 이번엔 ‘정권교체를 위한 백의종군’을 택했다. 지난 4년 반 동안 재기의 발판을 만들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으나 시대의 변화는 그의 편이 아니었다. 한때 이재오계, MJ계, DY계 등 자신의 이름을 딴 계파를 이끌던 실력자들이 대선이라는 최고의 승부처에서 링 밖으로 퇴장했다. 향후 대선 국면과 정치판에서 이들이 새로운 역할을 찾아낼지 주목된다.

친이명박계 좌장, MB정권의 실세, 2인자…. 지난 5년 동안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을 따라다닌 수사들이다. 화려한 시절을 뒤로 한 채 그는 9일 당내 비주류 처지를 절감하며 대선후보 경선 불참을 선언해야 했다.

이 의원은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완전국민경선제(오픈프라이머리) 도입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경선에 불참하겠다고 했다.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저는 오늘 무겁고 비통한 심정으로 경선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지난 5월 10일 대선 출마를 발표한 지 두 달 만이다.

그는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에 반대해온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당 지도부를 에둘러 겨냥한 듯 “당은 현재 모습이 과연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고, 차기 정권을 감당할 지지를 받을 수 있는지 겸허히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준비한 기자회견문을 읽어 내려가는 이 의원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회견문 낭독 후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때는 간간이 웃음도 보였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에서 권력의 한 축을 이뤘던 그가 대선 무대에 올라보지도 못하고 퇴장하는 심정은 퍽이나 씁쓸해 보였다.

이 의원은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의 일등 공신으로 평가되며 현 정권 출범과 함께 권력의 중심에 섰다. 그러나 18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친박근혜계와 갈등을 겪었고, 선거에서도 낙선해 2008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이듬해 돌아와 국민권익위원장을 맡고 7·28 재·보선을 통해 여의도에 복귀한 뒤 특임장관까지 지냈다. 지난 4·11총선 때 친이계 의원들이 줄줄이 낙천·낙선한 와중에도 홀로 당선됐다. 이명박 정권 핵심 인사들이 속속 비리에 연루되는 상황에서 거의 유일하게 칼날을 피한 그는 ‘가난한 대통령, 행복한 국민’이란 구호로 대권의 꿈을 키워 왔다.

이날 이 의원은 향후 행보에 대해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에 모든 정치력을 모으겠다”고만 했다. 박 전 위원장과 당 지도부를 향해 강한 불만을 쏟아낸 정몽준 전 대표와 달리 “누구를 탓하겠느냐”며 말을 아꼈다. 그는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결정되면 도와줄 것인가’란 질문에는 “그때 가서 보겠다”고 비켜갔다. 이 때문에 당내에선 그가 향후 대선에서 나름의 ‘역할’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왔다. 그의 한 측근은 “당분간 당내 비주류로 조용히 지내면서 입장을 정리할 것 같다”고 전했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