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DJ… JP… MB… 그녀에겐 쌈박한 약칭이 왠지∼

입력 2012-07-09 18:56


정치인 머리 글자에 담긴 정치학

이명박 대통령은 ‘MB’로 통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DJ’였다. 부르기 쉬워 널리 쓰인 이런 약칭이 새누리당의 독보적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에게는 없다.

박 전 위원장에게 어떤 약칭을 붙여줘야 국민들이 친근하게 느낄까? 고민 끝에 경선 캠프가 내놓은 답은 ‘박근혜’의 한글 초성 ‘ㅂㄱㅎ’이다. 8일 ‘ㅂㄱㅎ’을 사용한 PI(대통령 이미지)를 발표한 건 영문 이니셜 대신 한글 초성을 써서 신선하고 친숙하며 차별화된 이미지를 만들려는 시도였다. 그런데 시작부터 뭔가 개운치 않은 모양이다.

캠프 관계자는 9일 기자들에게 “ㅂㄱㅎ 대신 차라리 영문 이니셜 ‘GH’나 이름인 ‘근혜’를 사용했으면 어땠을 것 같으냐”고 물었다. PI에 대한 평가를 여기저기 알아보고 다니는 중이었다. 발표 이후 줄곧 “발음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고 한다. 캠프 실무진 사이에선 “‘버거허’께서 오늘…” “‘브그흐’님 일정은…”하며 ㅂㄱㅎ에 각종 모음을 붙여보는 농담 반 진담 반의 대화도 오가고 있다.

통상 대선주자급 정치인에겐 영문 이니셜 약칭이 붙곤 했다. 존칭도 아니고 비칭(卑稱)도 아니어서 큰 거부감 없이 쓰였다. 이런 약칭이 통용되려면 발음이 쉬워야 하는데 박 전 위원장의 GH는 그다지 쉬운 편이 아니다. 그동안 일부 지지자들이 박 전 위원장을 GH로 부르긴 했지만 큰 호응은 없었다. 박 전 위원장 본인도 지난해 언론 인터뷰에서 “GH보다 ‘박근혜’란 표기가 더 좋다”고 했다. 정치권에선 당 대표를 지낸 그의 경력을 감안해 보통 ‘박 대표’라고 불러왔다.

정치인 약칭의 원조는 박 전 위원장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는 게 정설이다. 그의 약칭은 특이하게도 영문 이니셜 ‘JH’가 아닌 ‘PP(President Park)’였다. 약칭이 대중화된 건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리가 YS DJ JP로 불린 ‘3김 시대’ 이후다. 최근에는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 SD, 정몽준 의원이 MJ 등으로 불리곤 한다.

거물급 정치인에게도 이런 약칭을 얻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1992년 대선 당시 언론에 “CY로 불러 달라”고 주문했지만 잘 쓰이지 않았다. ‘창(昌)’이란 호칭이 널리 쓰였던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는 ‘창’이 무기를 연상시킨다며 HC로 불리길 원했었다.

박 전 위원장의 경쟁 상대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도 아직 특별한 약칭이 없다. 박 전 위원장 측이 ‘친숙한 호칭’ 고민을 어떻게 풀어낼지 주목된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