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날 대권 꿈 접은 여야 잠룡 3인] 정동영 “멀고 험한 길 갈 것”

여야 잠룡 3명이 오랫동안 키워온 대권의 꿈을 접었다. 새누리당 정몽준 전 대표와 이재오 의원은 완전국민경선제 도입이 끝내 무산되자, 9일 각각 기자회견을 열어 경선 불참을 선언했다. 결국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은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 추대식과 다름없이 치러질 전망이다. 민주통합당 정동영 상임고문도 당내 경선 불출마 기자회견을 했다. 2007년 대선 당시 여당 후보였던 그가 이번엔 ‘정권교체를 위한 백의종군’을 택했다. 지난 4년 반 동안 재기의 발판을 만들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으나 시대의 변화는 그의 편이 아니었다. 한때 이재오계, MJ계, DY계 등 자신의 이름을 딴 계파를 이끌던 실력자들이 대선이라는 최고의 승부처에서 링 밖으로 퇴장했다. 향후 대선 국면과 정치판에서 이들이 새로운 역할을 찾아낼지 주목된다.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후보로 거론돼온 정동영 상임고문이 “이번에는 정권교체를 이루는 데 저를 바치겠다”며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정 고문은 9일 오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5년 전 대선 패배로 많은 국민에게 실망을 안겼다”며 “저는 조금 더 멀고 길고 험한 길을 가기로 했으며, 이번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정권교체의 길을 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3년 전 용산참사를 보며 ‘민주주의 심화’라는 새로운 길을 가야겠다고 결심했다”면서 “용산참사 희생자를 위한 추도미사 가운데 문정현 신부가 ‘저기 앉아있는 정동영 의원이 조금 더 잘했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했던 말씀이 아직도 제 귀에 쟁쟁거린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3년간 진보적 민주당 노선을 만들어내고 실천하는 데 온 힘을 다했다. 이제 이 노선을 실현하려면 반드시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고문은 앞으로 당내 후보가 결정될 때까지 특정 경선캠프에 가담하지 않은 채 대선 승리와 당 화합을 위한 물밑 노력에 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MBC 기자 출신인 정 고문은 1996년에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해 15·16·1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2002년 민주당 대선 경선 때는 노무현 후보와 마지막까지 경선을 완주해 빛나는 조연으로 주목받았고, 2007년 대선에선 민주당 후보로 선출됐으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531만표 차로 대패했다.

참여정부 및 열린우리당 시절 자신의 이름을 딴 당내 최대 계파인 DY계를 이끌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이후 친노무현계와 잦은 불화를 겪다가 2009년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을 탈당해 전주 덕진에 무소속 출마한 것을 계기로 당내 입지가 급격히 약화됐다.

현재 DY계는 대표적 멤버였던 전병헌 박영선 민병두 의원 등이 정 고문과 이미 등을 돌려 계파 자체가 거의 와해됐다. 민주당 핵심 당직자는 “과거 DY계 출신 중 많은 이들이 현재 김두관 전 경남지사를 돕고 있다. 현실적으로 정 고문이 자기 조직을 꾸릴 수 없었던 게 불출마 선언으로 이어진 이유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대선에서 617만표를 얻을 정도로 대중적 인기가 있는데다 호남권에선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만큼, 앞으로 차기 당권 또는 2017년 대선에 도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말이 당 일각에서 흘러나온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