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현길언] 대통령 후보 출마자들의 언어

입력 2012-07-09 18:30


“정략 넘어 선지자적 통찰력과 지사적 용기, 청렴성 갖춰 감동을 전달해야”

정치문화가 제대로 자리 잡혀 있는 사회였다면 요즘 국민은 행복한 나날을 보낼 것이다.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들이 사회를 위한 정책을 다투어 내놓고 있으니 국민도 그들의 언어를 통해서 행복한 미래를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찬란한 수사적 언어를 들을 때마다 행복하기는커녕 짜증이 난다. 국가 사회의 미래에 대한 비전이 불투명하고, 언어에 대한 진정성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출마선언식도 상가 개업식에서 고객을 유인하기 위한 행사걸들의 요란한 춤사위를 보는 것처럼 격이 낮아서 안타깝다.

대통령이 되려는 이들의 언어에서 치열함을 찾기 어렵다. 대통령이 된다면 무얼 할 것인가. 과연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인격과 자질과 능력을 갖고 있는가. 대통령이 되려는 것은 역사적 소명 때문인가, 아니면 권력욕 때문인가. 이런 문제를 가슴에 품고 잠을 설치며 고민했고, 대통령으로서의 자질과 품격과 지성을 갖추기 위해 괴로워했던 모습이 느껴지지 않는다. 혹 고민했다면, 내가 정말 당선이 될까. 상대방과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어떤 전략을 마련해야 할까. 이번에 안 되더라도, 이번 출마가 차기나 차차기를 위해서 정치적으로 이득이 될까. 국민의 마음을 내게 돌리기 위해 어떤 말이 필요한가. 이런 정도였을 것이다.

후보들은 국민과 함께 꿈꿀 수 있는 언어를 찾아내지 못하고,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해 정략적이고 공격적이고 상대를 파괴하는 언어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기에 그 언어에는 가슴을 울릴 수 있는 감동이 없다. 감동의 언어는 유명한 카피라이터나 광고 전문가가 만드는 기교적인 언어에서 발산되지 않는다. 좀 덜 세련된 언어라 하더라도 진정성이 담겨 있다면 누구에게나 감동을 준다. 진실의 언어는 인간을 감동시킬 뿐 아니라 자연을 감동시키고 신을 감동시킨다. 그 언어는 사람과의 약속에 그치지 않고 자연과 신과의 약속에 이르게 된다. 대통령이 된 후에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직무를 수행할 것이다. 그러나 후보들의 선언이 사람들의 얄팍한 감성을 자극해 박수를 받으려고 만들어진 것이라면 시간이 지나면서 말한 사람도, 들은 사람도 잊어버리고 만다.

후보들의 언어는 국민이 감히 꿈꿀 수 없는 새로운 꿈을 선포해야 한다. 우리는 꿈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 혹 꿈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욕망의 충족을 위한 저급한 꿈일 뿐이다. 삶이 어렵고 고단해 꿈꿀 수 없는 이 삭막한 세대에 꿈꿀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은 지도자의 몫이다. 후보들은 몇 달 후 선거를 위해 정책을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10년, 20년 후의 우리나라가 지향하는 역사적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 언어에는 후보의 철학과 세계관이 신념으로 담겨 있어야 한다.

이승만 박정희 두 대통령이 여러 가지 흠이 많음에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은, 그들은 역사적인 비전을 갖고 직무를 수행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우리에게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자’는 꿈을 제시했다. 당시로는 정말 꿈같은 이야기였다. 박 대통령은 가난을 운명처럼 생각하며 살아온 국민에게 ‘잘살아 보자’는 꿈을 심어주었다. 두 대통령은 그 꿈이 철학의 소산이었고, 인간적인 신념이었다.

국민의 꿈을 심어줄 수 있는 후보들의 언어는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 역사적인 통찰력과 현실에 대한 치열한 인식이 필요하다. 국민은 행복하고 국가는 부강하게 만드는 것이 대통령의 책무라면, 그런 국가 모형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을 내놓아야 한다. 후보들은 돈이 있으면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 수준의 생각은 누구나 갖고 있다. 그것만으로는 행복할 수도 없다.

탄탄한 사회 기반, 국민의 수준 높은 도덕의식, 정치인과 공직자의 공의와 자기 헌신, 진정한 사회 통합 없이는 돈이 있어도 행복한 사회를 이룰 수 없다. 대통령 후보들은 제2의 건국의 신념으로 정략을 넘어 선지자적인 통찰력과 지사적인 용기, 청렴을 갖추어야 한다. 국민들의 일상적 의식에 충격을 줄 수 있는 후보들의 언어가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현길언 소설가·‘본질과현상’ 편집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