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동반성장 사각지대] 공사비 깎고 또 깎고, 대물변제까지… 하청업체 피눈물

입력 2012-07-08 19:21


<상> 공사비 대신 미분양 아파트, 골프장 회원권 받는 현실

중소 건설업체들이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 동반성장이 사회적 이슈로 부상했지만 건설업계의 불공정 하도급 문제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건설업계가 모두 불황이지만 이 가운데 소규모 건설업체들은 대형 건설업체의 횡포에 생존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대형 건설업체들도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다. 하도급 업체들이 공사는 제대로 하지 않고 돈만 받으려 한다는 것이다.

불공정 하도급 문제는 공사품질 저하, 부실 공사 등으로 이어지곤 한다. 시리즈를 통해 대형 건설업체와 중소형 건설업체 간 불공정 실태를 알아보고 이들이 상생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건설업체 J사는 2008년 4월 대형 건설사가 하청을 주는 인천의 한 공사에 참여했다. 계약 금액은 40억여원으로 하도급 업체로는 큰 규모의 공사였다.

하지만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직전, 대형 건설사가 무리한 요구를 해왔다.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지방의 한 골프장 회원권을 사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계약서에 ‘본 공사의 견적조건 추가사항: P 골프회원권 1개 계좌 포함하여 견적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넣어 명문화했다.

J사는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계좌당 2억원인 골프 회원권 2계좌(4억원)를 구입했다. 결국 현금은 36억원만 받고 나머지 4억원은 골프 회원권으로 대신 받은 셈이다. J사는 이 밖에도 대형 건설업체들의 이런저런 불공정 하도급 행위에 시달리다 결국 문을 닫았다.

다른 건설업체는 원전 사고가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의 골프장 회원권을 사라는 원청 업체의 요구를 못 이기고 1300만원을 송금하기도 했다.

불공정 하도급 문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 2011년 통계에 따르면 자진 폐업·부도 등으로 문을 닫은 중소 건설업체가 3637개라는 수치가 이를 입증한다.

불공정 하도급 문제는 계약 전 과정에 존재한다. 입찰 단계에서부터 초저가 낙찰을 유도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유찰한다. 계약 체결 단계에서는 이익을 전혀 남길 수 없는 금액으로 공사비를 책정한다. 이 돈마저 안 주려고 공사비 일부를 물품으로 대신하는 대물변제를 조건으로 내건다. 공사비 지급 단계에서도 어음 비율을 높이고, 약속했던 기간보다 늦게 공사비를 지급하는 경우가 잦다.

대물변제는 하도급 업체를 괴롭히는 가장 큰 병폐다. 골프장 회원권은 물론 미분양 아파트를 떠넘기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K사는 대형 건설사로부터 공사비 23억여원의 구간 도로공사를 하청 받아 3억4300만원인 대전의 한 아파트를 반강제로 사야 했다. 이 아파트가 미분양이라 이 회사는 중도금 대출과 이자 등의 금융 부담까지 떠안았다.

건설업계의 실태조사 결과, 2009년 2월 기준으로 모두 117개의 중소형 건설업체가 700억원 상당의 건설비를 아파트로 대신 받았다. N건설은 하청업체에 자신의 자회사가 수입하는 외제차 6대를 떠넘기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철퇴를 맞았다.

높은 어음비율도 하청업체들을 울리는 요인이다. 하청업체들은 자재비와 근로자 임금 등을 현금으로 지급하지만 원청업체로부터는 어음을 받기 때문에 연간 8350억원의 금융 부담을 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불공정 하도급은 단순히 건설업계 내부의 부조리가 아니라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사회적 문제를 양산할 위험을 지니고 있다.

현재 등록된 3만8058개 중소 건설업체에 고용된 근로자는 115만명으로 추산된다. 이들 업체의 부도·폐업은 건설 근로자들을 실업으로 내몬다.

전체 근로자 평균 임금보다 훨씬 낮은 월 평균 206만 7000원을 받는 건설업 종사자들이 월급을 제대로 못 받거나 일자리를 잃을 경우 사회 밑바닥층으로 전락하는 건 시간문제다. ‘실업-구매력 저하-경기 불황’의 악순환도 우려된다.

무리하게 공사비를 절감하고 공기를 단축하다 보면 공사품질 저하와 부실 공사를 피하기 힘들다. 건설 사고의 특성상 부실 공사는 막대한 인명·재산 피해를 낳는 대형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저가 공사로 당장은 공사비를 아낄 수 있지만 보수비용 등 추가 지출이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