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기관 등 중요 정보만 보고하라”… 민생 치안엔 귀막나
입력 2012-07-08 22:15
서울지방경찰청 정보관리부에서 일선서 정보 경찰관들에게 “지역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문제보다는 정부 등 중요 기관에 대한 정보를 취합해 보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경찰이 ‘민생치안’의 기본 정보가 되는 주민 애로사항 등은 외면하고 경찰청 등 상부의 관심사항인 기관·주요인사 동향 보고에만 치중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8일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서울청 정보관리부장 주재로 열린 워크숍에서 이 같은 내용의 지침이 정해졌다. 이 지침은 곧바로 서울지역 일선 경찰서 내부망으로 하달돼 지난 2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일선 경찰서 정보과 소속 경찰관들은 지역 내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동향 정보를 모아 윗선에 보고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은 지역주민과의 관계를 꾸준히 유지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분쟁의 소지가 있을 경우 이를 중재하는 역할도 해 왔다.
이들이 보고하는 정보는 정보 가치에 따라 ‘상보(20점), 중보(10점), 참고(0점)’로 나뉘는데 지역 내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정보들은 모두 ‘참고’로 분류된다. 서울청은 일선서 정보 경찰관들이 ‘참고’를 보고하는 일이 잦으면 인사 평가에서 해당 경찰관뿐 아니라 정보과장도 불이익을 주는 등 책임을 묻겠다는 방침도 하달했다.
서울청은 이 같은 지침을 내린 이유에 대해 “일선서에서 올라오는 방대한 정보가 비효율적으로 처리되던 폐단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선 31개 경찰서의 정보 경찰관 800여명이 하루에도 수백 건씩 정보를 올리는데 이를 일일이 확인하기도 벅차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보 경찰관들이 중요 기관에 대한 정보수집 활동만 펼치고 지역주민들의 애로사항에 대해선 오히려 귀를 닫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실제로 이 지침 하달 이후 정보 경찰관들의 정보보고 건수도 크게 줄었다. 정보 경찰관들은 기존에 하루 2~3개 정보를 보고했지만 지금은 하루 한 개도 보고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일선서 정보 경찰관들의 불만도 터져나오고 있다. 한 일선서 정보 경찰관은 “지역 활동에 대한 정보를 보고하지 말라는 것은 그동안 유지했던 지역주민들과의 관계를 앞으로는 소홀히 해도 된다는 거냐”며 “경찰은 지역의 사소한 일에도 귀 기울여야 하는데 굵직한 정보만 보고하라는 것은 경찰청장 등 상부의 관심사항만 챙기겠다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또 다른 정보 경찰관은 “당장 활용가치가 없어 보이는 지역 정보도 ‘허수’가 아니라 국민 여론을 반영하는 중요한 자료”라며 “정보가 너무 많아 평가·분석이 어렵다면 정보량을 줄이는 게 아니라 분석 인력을 늘리는 것이 합리적 방안”이라고 말했다. 서울청은 이달 중순까지 이 같은 방식을 시범 운영한 뒤 문제점을 파악해 개선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이에 대해 서울청 관계자는 “단순히 실적을 쌓기 위한 ‘수박 겉핥기식’ 정보를 줄여보자는 취지로 개선안을 마련한 것이지 중요한 민생 치안 정보까지 보고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