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김기태] ‘독서의 해’에 기대한다
입력 2012-07-08 10:22
지난 3월 9일 문화역서울284(구 서울역사)에서 ‘2012 독서의 해 선포식’이 열렸다. 내게 그 장면은 기시감인 듯 20년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1993년 ‘책의 해 선포식’과 겹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4개월이 지난 지금 ‘독서의 해’를 돌이켜보면 고갱이는 고사하고 쭉정이마저 보이지 않는 다는 점에서 ‘책의 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애초에 ‘독서의 해’ 운운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는지도 모른다. 선포식 당시 관계자들은 “독서의 해 행사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국민 모두가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독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균등한 독서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어찌 ‘해’를 정해 놓고 계획할 일이란 말인가.
정보사회의 경쟁력은 책읽기
독서는 세 단계 과정을 포함한다. 독자가 어떤 책과 작품을 선택하는 과정, 책을 읽어가는 해석·해독의 과정, 책을 읽은 뒤 책 읽기의 영향에 의해 자신의 삶을 재구조화하는 과정이 그것이다. 아울러 지금까지 책이 중요한 매체라는 사실, 책 없이는 인간다운 인간으로 성장할 수 없다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한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독서가 일상화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정보화사회로 불리는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유수의 국가들이 정책차원에서 독서운동을 장려하고 있을 정도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는 독서운동은 환영할 만하다. 정보사회의 경쟁력은 전통적인 독서력에 기반한다는 자각이 지식인 계층으로부터 싹트고 있다. 빠르게 정보사회에 대한 적응력을 길러내는 것이야말로 지식기반사회의 최우선 과제라고 역설해 온 기술중심적 사고가 결국 문화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는 반성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문·사·철이 죽어간 그 자리에 독서라는 새싹이 자라는 것이다.
문화기술로서의 독서는 정보사회에서도 정치·경제·문화적 생활에 폭넓게 참여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며, 특히 습관적 독서는 능동적 정보추구, 정보수용, 정보인식 그리고 창의적 정보활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요컨대, “지식격차는 뉴미디어 자체의 이용능력 차이보다 근원적인 독서능력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과 함께 “독서력이 정보사회의 필수조건으로 등장하였다”는 주장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시점을 맞이한 것이다.
특히 유아기로부터 청소년기로 이행하는 시기의 독서는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할 국가적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독서는 그 행위로써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일찍부터 습관화될수록 좋은 일이다. 독서는 곧 인생의 씨를 뿌리는 것과 같고, 일생을 두고 수확할 수 있는 과실과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유비쿼터스 독서환경 구축을
작은 충격에도 상처받기 쉽고 종이에 물이 스미듯 새로운 것을 마음껏 흡수할 수 있는 시기, 즉 섬세하고 부드러운 마음 상태에 놓여 있는 어린이일수록 좋은 책을 읽으면 그만큼 크게 감동받고 그 감동을 살려 자기 인생의 바른 방향을 잡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어린이도서관을 중심으로 번져가는 ‘북스타트 운동’이야말로 적극 장려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하필이면 정권 말기에, 총선과 대선이 겹치는 분주한 시기에 ‘독서의 해’를 슬그머니 끼워 넣은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4대강이 우리 핏줄이라면 책은 우리 두뇌일진대, 어찌 그리 무심한지 답답하다. 이참에 수상한 ‘독서의 해’라는 허상을 거둬내고 언제 어디서나 독서를 즐길 수 있는 ‘유비쿼터스 라이브러리’ 정책을 입안해 주기 바란다. 책이 아니어도 살아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세상으로 변해가는 세태가 두려운 요즈음이다.
김기태(세명대 교수·미디어창작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