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강제노역장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면
입력 2012-07-08 19:46
일본이 미쓰비시중공업의 나가사키 조선소 등에 대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주도하는 관련 전문가 회의가 지난 3일 처음 열려 2015년을 목표로 산업 분야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추진키로 했다.
일본 측이 내세우는 명분은 나가사키 조선소의 경우 동양 최초로 세워진 대형 조선소이며 다른 탄광이나 제철소 등도 일본 근대화의 기초를 닦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가사키 조선소는 태평양 전쟁 당시 조선인 4700여명이 징용돼 군함을 만드는 강제노역을 당하다 1945년 8월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때 1800명 이상이 숨진 곳이다. 다른 세계유산 후보로 거론되는 신일본제철 야하타·가마이시 제철소 역시 조선인 3929명이 임금도 받지 못한 채 중노동을 강요당하던 곳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인류 전체를 위해 보호돼야 할 현저한 보편적 가치가 있어야 등재된다. 일본 군국주의가 반인도적 강제징용을 통해 전쟁물자를 생산하던 전쟁범죄 현장은 원천적으로 자격이 없다. 일본은 2009년 ‘규슈·야마구치 근대화 산업 유산군’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올릴 때에도 일제 침략 과거사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비 서구 국가로는 처음으로 산업 근대화에 성공했다”는 점만 부각시켰다. 이런 전례로 볼 때 조선인 징용자들의 한이 맺힌 현장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일본의 의도는 경제 성과를 앞세워 군국주의 침탈의 역사를 은폐하거나 호도하겠다는 것임이 분명하다.
우리 대법원은 지난 5월 징용 피해자 9명이 미쓰비시와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일본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는 한일청구권협정 대상에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일본 기업들이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일본은 여전히 배상 문제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고 있다. 일본은 군국주의 범죄 현장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 나서기 전에 전쟁책임 문제부터 해결하는 게 옳다. 이런 전제조건들을 무시하는 것은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없다는 숱한 방증 가운데 하나를 추가하는 일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