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찬희] 두 개의 문, 하나의 진실

입력 2012-07-08 19:57

2009년 1월 20일 새벽 5시. 어둑한 밤공기를 뚫고 서울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 앞 8차로 도로에 살수차, 기중기, 컨테이너박스가 배치됐다. 건물 안에 있던 시위대 30여명은 격렬하게 저항했다.

오전 6시 경찰은 ‘물대포’를 쏘며 경찰 특공대를 투입했다. 건물 1층으로 특공대가 진입하고 곧이어 특공대 10여명을 태운 컨테이너박스가 옥상으로 들어올려졌다. 오전 7시10분 시위대가 전날 옥상에 설치한 5m 높이 망루에 불이 옮겨 붙었다. ‘펑’하는 폭발음이 들렸다.

불이 붙은 지 50분 만에 진화됐고, 동시에 작전도 끝났다. 재개발이 결정된 서울 용산4구역 인근 상인들과 전국철거민연합 회원 30여명이 농성을 시작한 지 28시간 만이었다. 신속한 진압 작전은 철거민 5명과 경찰 특공대원 1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지난달 21일 용산참사를 다룬 ‘두 개의 문’이라는 독립영화가 개봉됐다. 유가족 동의 없이 이뤄진 시신 부검, 사라진 3000쪽 수사기록, 삭제된 증거수집 영상, 참혹한 당시 모습 등을 차례로 언급하는 영화는 무겁다. 그런데도 개봉 8일 만에 관객 1만명을 돌파했다. 독립영화 신드롬을 일으켰던 2009년 ‘워낭소리’ 이후 가장 빠른 흥행 속도다.

그날로부터 3년이 훌쩍 흘렀다. 영화는 애써 잊고 지냈던 불편한 기억을 끄집어낸다. 무엇이 진실인지 혹은 무엇이 문 너머에 있는 세상인지 묻는다.

용산참사 이후에도 곳곳에서 재개발·재건축에 따른 갈등과 마찰이 일어나고 있다. 정당한 재산권을 행사하려는 사람, 시민의 안전·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경찰, 생존을 위협 받으며 거리로 내몰리는 철거민들이 있다.

재개발은 자본의 냉혹함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현장이다. 자본에게는 피도 눈물도 없다. 하지만 재산권을 행사하려는 이들을 흘겨봐서는 안 된다. 그들은 그들대로 정당하고 합법적이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철거민의 과격함을 탓할 수도 없다. 생존의 벼랑 끝에 선 그들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으랴.

그래서 이제는 두 개의 문을 모두 열어젖혀야 하지 않을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에서 ‘인간적 자본주의’를 외치는 목소리가 높다. 탐욕으로 얼룩진 자본주의를 보완할 새로운 경제·사회 이념으로 거론된다. 공익과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인간을 우선하는 자본주의. 용산참사가 우리에게 되묻는 ‘진실’도 여기에 있어 보인다.

김찬희 차장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