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신인식 (11·끝) 다시 보고싶은 세상 ‘시각장애인 복음화’로 승화

입력 2012-07-08 18:10


내가 두 눈으로 본 마지막 풍경은 가재 한 마리와 구름이 잔뜩 낀 하늘 그리고 둥근 우물이다. 그날 할머니는 나를 업고 계시다 우물 속에서 잡은 가재 한 마리를 보여주셨다. 어린 나는 움직이는 가재를 향해 열심히 기어갔다. 가재가 손에 닿을 때쯤이면 할머님이 가재를 집어 멀리 놓으시고 그러면 나는 가재를 잡으러 부리나케 기어갔다. 그 모습이 귀여웠던지 할머니는 연신 박장대소하셨다.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그날은 우물에 새 물을 받던 날이라고 했다. 가끔 이게 진짜 내 기억인지 어머니 말씀으로 상상하는 것인지 긴가민가하지만 잊을 수 없는 풍경으로 소중하게 남아있다.

지금 나는 모든 것을 마음으로 본다. 푸른 하늘, 흰 구름이라고 하면 마음속에 어린시절 본 그 장면을 그린다. 흰 눈과 쏟아지는 비, 날아가는 새와 피어나는 꽃이라고 하면 그 장면을 마음속에 그린다.

어려선 집안이 너무 가난했고 의술도 발달하지 않아서 다친 눈을 고칠 수 없었지만 이젠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서 검사를 받은 적이 있었다. 1990년쯤 미국 뉴욕에 갔을 때 가장 권위 있는 독일인 의사에게 진찰을 받았다. 병원으로 출발하는 순간부터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내내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만약 다시 볼 수 있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이들은, 아내는 어떻게 생겼을까. 어머니는 얼마나 늙으셨을까.

하지만 의사의 진단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한 번 더 확인받은 것에 불과했다. 어린시절에 드러난 상처는 이마였지만 내부적으로는 시신경을 다친 거라고 했다. 시신경이 완전히 타 버린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눈은 망막, 각막, 수정체, 결막 등 여섯 꺼풀로 되어 있는데 나의 경우, 안구를 이식한다고 해도 볼 수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앞이 더욱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보게 되는 일이 오히려 두렵다고 말하면서도 볼 수 있기를 내심 얼마나 갈망했나 싶었다. 잠시 힘들었지만 절망하지 않았다. 마음을 추슬렀다. 볼 수 없음이 내게 축복이었음을 다시 기억했다. 볼 수 없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생각했다. 죽기 전까지 앞을 볼 수 없다는 확진이야말로 확실한 축복이었다.

초등학교를 늦게 입학한 나는 늘 공부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공부에 대한 목마름은 서울장로회신학대학교를 거쳐서 미국 페이스신학교에서 신학박사 과정을 수료하면서 많이 해소되었다. 좀 더 공부할 필요성을 느껴 명지대 사회복지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2011년에는 대구대에서 직업재활 전공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ARS시스템 기반 시각장애인 웹 사용성 모형 개발’이란 박사학위 논문은 시각장애인들이 웹 서비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문자를 소리로 바꿔주는 프로그램의 소개와 향후 전망을 담았다.

나의 꿈 이야기로 이번 연재를 마무리하고 싶다. 나의 어린시절 꿈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잘살 수 있는 재능을 주셨다. 침술과 안마로 물질을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각장애인복음화의 소명을 받은 후 나는 잘살고 싶은 재능과 마음을 하나님께 반환했다. 그리고 30년이 지났다. 여전히 선교회의 어려움은 계속되지만 나의 마음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늘 감사하다.

오늘도 무한도전을 꿈꾼다. 절망을 만날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 저를 대체 얼마나 크게 쓰시려고 이런 아픔을 주시나요. 어떤 계획을 하고 계시기에 이런 경험을 하게 하시나요. 그러나 기다리고 또 기다리겠습니다.” 그러면 오래지 않아 하나님은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그래서 안달복달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시며, 모든 일에는 정해진 때가 있다는 걸 안다. 과거의 고난이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이다. 그동안 나를 응원해주신 모든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한다.

정리=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