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교사제 법제화 1년… 책 내용과 생활 접목, 수업 분위기가 살아 숨쉰다

입력 2012-07-08 18:20


공교육 내실화를 기치로 내건 수석교사제가 법제화 1년을 맞았다. 지난해 7월 수석교사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개정 초중등교육법이 공표됐으며, 12월 3일 수석교사 1147명이 임명돼 일선 학교에 배치됐다.

수석교사는 ‘교사를 가르치는 교사’다. 15년 이상 경력을 가진 교사 가운데 선발된 수석교사는 담임을 맡지 않으며 각종 행정잡무로부터 자유롭다. 수업시간도 일반 교사의 절반이다. 대신 수업의 질을 어떻게 높일지 연구하고, 연구 성과를 교실수업에 어떻게 접목할지 고민한다. 교장의 직급보조비와 같은 40만원의 연구활동비를 받으며 교감급 대우를 받는다.

국민일보는 수석교사제 원년의 첫 학기를 마무리하고 있는 수석교사들을 만나봤다. 수석교사를 중심으로 수업 역량을 업그레이드하는 곳도 있었지만, 교장·교감과의 불화로 수석교사가 교실 언저리에서 겉도는 현장도 있었다.

지난 6일 오후 1시30분 서울 영등포동 영원초등학교 3학년1반 교실. 교탁 위에 등장한 배불뚝이 옹기 항아리에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제 몸통만한 옹기 항아리가 신기했는지 연신 항아리 표면을 매만지던 아이들은 6교시 시작종이 울리자 대여섯 명씩 모둠(조)을 이뤄 앉은 자리로 얼른 돌아가 앉았다.

이날 수업은 이미자(41·여) 수석교사의 첫 사회과목 시연이었다. 교실 뒤쪽엔 교장과 교감, 연구부장 등 보직교사들과 5년차 미만의 교사 9명이 자리했다. 1995년 초등학교 교단에 처음 선 이 교사는 서울지역 최연소 수석교사로 올해 3월 이 학교에 부임했다.

이날 수업에서 ‘지혜를 담아온 생활도구’란 단원을 가르쳐야 하는 이 수석교사는 교과서 읽기와 판서(칠판에 글씨쓰기)를 생략했다. 대신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옹기 항아리 안에 무엇을 넣을 수 있을까?” ‘간장’ ‘고추장’ ‘된장’ ‘김치’ 등 이곳저곳에서 대답이 터져 나왔다.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데 성공한 이 수석교사는 교탁 옆에 놓인 삼각대로 발길을 옮겨 몇 장의 사진을 올려놓았다. 수많은 옹기를 배경으로 한 현대식 한식당과 요리사의 사진이었다. 이 수석교사가 다시 질문을 건넸다. “왜 요즘 한식당에서는 아직도 옹기를 사용하고 있을까?”

아이들의 눈이 궁금증에 반짝거렸다. 그러나 선뜻 손을 드는 학생이 없었다. 이 수석교사는 ‘정답’을 일러주는 대신 손수 준비해온 읽기 자료를 각 모둠에 나눠줬다. 스스로 답을 찾으라는 의미였다. 아이들은 사진을 유심히 바라보며 생각에 빠져드는 모습이었다. 이 수석교사는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 여럿이 생각하면 정답을 빨리 찾을 수 있다”며 아이들에게 토론을 독려했다. 교실은 이내 재잘대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소란스러워졌지만 이 수석교사는 빙긋이 웃기만 했다.

수업이 절반쯤 지나자 아이들이 손을 들기 시작했다. 정채은(9)양은 “옹기는 흙으로 만들어져서 인체에 해롭지 않다”고 말했다. 함예찬(9)군은 “옹기는 모양이 둥글어서 햇볕을 골고루 잘 받는다”며 “흙으로 만들어진 옹기는 바람이 잘 통해 음식을 항상 신선하게 보관할 수도 있다”고 발표했다.

수업의 마무리는 편지 쓰기. 이번 시간에 배운 옹기를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에게 편지를 써보라는 것이 이 수석교사의 주문이었다. 최서윤(9)양은 “외국에 있는 언니에게 옹기를 자랑하고 싶다”고 말했다. 투박한 솜씨지만 제법 그럴듯한 옹기 그림을 엽서 왼편에 그려 넣은 김윤규(9)군도 “옹기에 숨 쉬는 구멍이 있다는 게 참 신기하다”고 말했다.

교실 뒤에서 수업을 참관했던 2학년 담임 민혜령(37·여) 교사는 “사실 교과서 내용이 실질적인 측면과 동떨어진 게 없지 않은데 이 선생님의 수업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감탄했다.

이 수석교사는 “새로운 방식의 수업에 대한 열망은 교대 시절부터 항상 있었던 것 같다”며 “어떻게 하면 좀 더 새로운 것, 변화된 것을 수업에 쉽게 적용해 아이들을 이해시킬 수 있을까 고민해 온 편”이라고 말했다. ‘좋은 수업에 대한 열망’은 이 교사가 자연스레 수석교사에 지원하게 된 계기이자 동력이 됐다.

수업을 참관한 교사들은 수석교사제 도입의 가장 큰 성과로 교사들 사이에 조성된 면학 분위기를 이구동성으로 지목했다. 3학년 담임 강지욱(29) 교사는 “수석교사를 멘토로 삼고 동료들과 수업 방식을 토론하면서 단원별로 여러 형태의 수업 방식을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수석교사는 “수업에 대해서 자유롭게 평가하고 토론하는 분위기 형성이 수석교사 역할의 핵심”이라면서 “수석교사가 수업을 시연한 뒤 일회성으로 ‘좋다’고 평가하고 끝나버리고 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시험문제 출제 등 평가 부분에서도 수석교사의 노하우를 활용한다. 시험문제를 만들어 수석교사에게 검토를 의뢰하면 수석교사가 조언하는 방식이다. 시험 문항 검토를 아예 수석교사의 권한과 책임으로 두고 있는 학교도 적지 않다. 수석교사제 도입 전에는 교감이 형식적으로 시험문항을 검토하면 교장은 도장만 찍어 왔다는 것이 일선 교사들의 설명이다. 수석교사제 개입 이후 시험문제의 오류도 많이 줄었고 학부모들의 항의도 크게 줄었다는 게 교사들의 증언이다.

수업을 교사 개개인의 고유영역으로 인식하던 사고도 달라지고 있다. 경기도 부천시의 한 수석교사는 “요즘 젊은 선생님들은 소속 학교에 수석교사가 배치돼 있지 않으면 주변 학교를 수소문한 뒤 전화로 수업방식을 컨설팅해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김수현 기자 siemp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