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금지곡
입력 2012-07-06 18:40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는 독일군의 사기를 꺾는다며 ‘릴리 마를렌’을 금지곡으로 정했다. 라디오를 통해 이 노래가 흘러나올 때면 독일군은 물론 연합군도 열광하면서 전투까지 중단될 정도였다고 한다.
이 곡은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 징집된 한스 라이프가 고향에 남겨둔 애인 릴리와 전쟁터에서 만난 간호사 마를렌에 대한 사랑을 담아 쓴 시에 한 작곡가가 곡을 붙이면서 만들어졌다. 괴벨스가 이 노래를 금지시키자 방송국에는 이 음악을 틀어달라는 군인들의 편지가 빗발쳤다. 결국 괴벨스는 방송금지 명령을 풀었고 매일 밤 9시55분이면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군사독재 시절 금지곡들이 많았다. 이유도 다양했다.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는 불신을 조장한다고 해서, 신중현의 ‘미인’은 내용이 퇴폐적이어서,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허무주의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각각 금지곡이 됐다. 한대수의 ‘물 좀 주소’는 물고문을 연상케 해서, 송창식의 ‘왜 불러’는 장발 단속에 저항하고 공권력을 조롱했다는 이유로, 이장희의 ‘그건 너’는 남에게 책임을 돌렸다는 이유로 금지됐다. 심수봉이 1980년 부른 ‘순자의 가을’은 영부인 이름이 들어가서, ‘무궁화’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참으면 이긴다” 가사를 언짢아해 금지곡이 됐단다.
수많은 금지곡들이 세상 밖으로 나온 건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덕분이다. 얼마 전 인디밴드들이 10월 유신 40주년과 6월 항쟁 25주년을 기념해 ‘금지곡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그제는 국립중앙도서관 지하 5층 서고에 한국공연윤리위원회의 가사 및 악보 심의자료 15만8082점이 보존돼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김민기의 ‘아침이슬’과 정태춘의 ‘시인의 마을’,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 등에 빨간 줄이 그어져 개작 지시가 내려졌다고 한다. 시대에 저항하고 자유와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음악으로 표현해낸 예술인들을 억누르려 했던, 정당성을 잃은 군사독재 정권의 어두운 잔재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개방의 시대인 요즘도 금지곡이 없는 건 아니다. 노골적인 가사와 선정적인 안무로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아이돌 노래를 ‘표현의 자유’로 봐야 할지, 청소년들에게 해롭다며 ‘19금 딱지’를 붙여야 할지 딜레마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