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배의 말씀으로 푸는 건강] 치매

입력 2012-07-06 18:07


하버드의 신경학박사인 리사 제노바가 쓴 소설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원제 Still Alice)’는 조발성 치매를 앓는 앨리스라는 중년 여교수의 이야기입니다. 총명했던 앨리스는 어느날 퇴근하다 집을 못 찾아 한참을 헤맸습니다. 다음날은 사무실에서 뭔가를 찾다가 문득 자신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모르는 걸 깨닫기도 합니다. 학교에선 강의 제목이 생각 안 나 곤경에 빠지기도 했고, 병이 진행된 뒤에는 집안에서 화장실을 못 찾기도 하고, 사랑했던 딸을 알아보지도 못합니다. 책 제목처럼 여리게 사라져가는 기억의 조각을 붙잡으려 애쓰는 주인공은 “내가 누구죠?”라고 묻습니다.

알츠하이머 치료·진행 막는 약물 없어

기억력 장애를 주 증상으로 하고 사고력, 추리력, 판단력 등 제반 인지기능에 손상이 있으며 그런 증상들이 일상생활에 충분한 어려움을 나타낼 때 그런 상태를 치매라 부릅니다. 수세기 동안 노망이라 부르며 나이 먹으면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생리적 현상으로 여겨져 온 치매의 주된 원인 질환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뇌에 아밀로이드란 이상 단백질이 쌓여 뇌세포의 기능을 망가뜨리는 알츠하이머병과 뇌혈관이 막히거나 작은 뇌졸중이 반복되어 뇌손상을 일으키는 혈관성 치매가 그것입니다. 소수지만 파킨슨병에 동반되기도 합니다.

두 세대에 걸쳐 65세 이전에 생긴 조발형 알츠하이머병이 아니라면, 부모님 중에서도 노년에 나타난 알츠하이머는 유전된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여성에서, 또 학력이 낮은 사람에게서 조금 더 발생한다는 통계는 있습니다. 반대로 폐경 이후 호르몬 요법을 받는 사람과 관절염 치료를 위해 소염진통제를 복용하는 이에서 치매 발병의 위험이 적다는 연구는 있습니다.

인종별로는 인도인이 치매 발생 비율이 낮으니 인도 사람들이 즐겨 먹는 카레의 강황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도 하고, 활성산소 흡수 능력이 높은 과일이나 색이 짙은 야채가 뇌세포의 손상을 줄여줄 거라고 추정은 하지만 입증된 것은 아직 없습니다. 다만 신체의 운동이 뇌혈류를 증가시켜 기억을 포함한 뇌의 인지기능을 증가시킨다는 보고는 적지 않습니다. 예방 백신을 포함한 광범위한 연구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아직은 치매의 주된 원인인 알츠하이머를 치료하거나 진행을 막는 약물은 없습니다.

그러나 초기 단계에서 기억력, 집중력, 주의력 등을 향상시켜주고 증상 호전의 기간을 늘려 병의 진행을 더디게 만드는 듯한 정체기를 늘려주는 약물은 있습니다. 또 치매에 따르는 부수적인 증상, 즉 불안이나 우울, 불면, 길거리 방황 등은 항정신 약으로 조절이 가능합니다.

무엇보다 치매 환자를 돌봐야 하는 가족의 수고는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치매 환자를 수년간 돌봐온 이들의 염색체에서 수명을 예측하는 텔로머의 길이가 짧아져 있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이는 약 5년 정도의 수명 단축을 의미하며 그 스트레스의 정도가 얼마만한지를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게 합니다.

살면서 우리가 기댈 곳은 주님의 은혜

남이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며 스스로는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는 그 시기에도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며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롬 8:26)하십니다. 나의 유리함을 계수하시고 나의 눈물을 당신의 병에 모으시며(시 56:8) 지나온 삶이 헛되지 않았노라 말씀하십니다.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에서 앨리스가 남편 존에게 말합니다. “내가 그리워.” 그녀를 지켜주던 존이 대답합니다. ”여보, 나도 당신이 그리워.” 살면서 우리가 기댈 곳은 주님의 은혜뿐인가 합니다. 예수님, 당신이 그립습니다.

<대구 동아신경외과원장· 의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