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불황, 네가 뭔데] 위기, 내겐 기회… 중견 기업의 사투
입력 2012-07-06 18:27
고물상에 불황이란 단어는 없었다. 외환위기 때도 고물상들은 오히려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 고물상들은 죽을 맛이다. 소비가 줄어 물건을 포장하는 박스도 줄고, 건설경기 침체로 고철도 나오지 않는다. 폐지나 고철값도 뚝 떨어져 힘들게 수거해 팔아봐야 손에 쥐는 돈은 예년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건설경기 불황도 혹독하다. 업체들은 사업다각화로 체질개선에 나섰지만 여전히 불확실성과의 싸움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국영지앤엠 최재원 회장
충남 천안 공장에서 4일 만난 창호유리 전문업체 국영지앤엠의 최재원(68) 회장은 “도대체 (불황의) 끝이 어디인지 모르겠다”며 연신 마른 침을 삼켰다.
지난 1985년부터 28년째 이 회사를 운영해 오면서 숱한 위기를 넘겨 ‘위기 극복이 주특기’라는 그지만 이번 불황은 녹록지 않다. 중견 건설업체들이 줄줄이 무너지고 있는 최악의 건설 불황에 주매출원인 건축유리 사업의 적자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입찰을 받는 출혈경쟁이 이어지면서 최근 동종업계 10위권 업체 중 3곳이나 문을 닫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엔 결기가 있었다. 불황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위기 극복 의지가 다시 꿈틀대는 듯했다.
그가 지난 3월 천안에 새 공장을 지었다. 서울 사옥과 기흥공장을 매각하고 유상증자까지 해서 마련한 300억원을 투자해서 지은 공장이다. 건설유리로만은 살아남을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복층차열방화유리, 방탄유리, 방폭유리, 선박유리, 고속열차유리 등 특수기능성 판유리까지 생산할 수 있는 최신 시설을 대거 확충했다. 영업이익률이 높고 해외 시장에서도 경쟁할 수 있는 특수 유리에 승부를 건 것이다. 외국기술자를 불러 기술 이전을 받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다. 불황으로 공장이 규모를 줄일까봐 걱정했던 100여명의 직원들도 4만1737m² 규모의 공장 생산시설과 복지시설에 놀랐다고 한다.
최 회장은 과감한 투자의 배경으로 외환위기 당시 혹독한 경영수업을 거치면서 얻은 교훈을 꼽았다. 그는 “지급보증을 섰던 회사가 도산하고, 산업용 유리 전문 공장이 실패하며 외환 위기 당시 회사는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공을 들였던 일본 업체들의 수주가 잇따랐고, 인천공항 외벽용 유리공사의 60%를 수주하면서 회사는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이때 기술 개발을 위한 꾸준한 투자와 공급선 다양화 노력이 결국 위기 때 빛을 발한다는 점을 깨달았다는 설명이다.
물론 위기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3월부터 가동에 들어간 천안공장은 태양광 모듈용 강화유리 대량생산 체제를 갖췄지만, 지난해 태양광 시장에 경쟁적으로 진출을 계획했던 대기업들이 올 들어 대부분 관련 사업을 보류했다. 또 천안공장 이전에 따른 지자체 지원금도 기대에 한참 못미쳤다. 이달부터 ‘에너지효율 창호등급제’가 시행될 경우 비싼 시험료를 내야 하는데다 창호를 만드는 대기업 위주로 시장이 재편돼 생존은 더 힘들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그는 “최근 몽골에 건축용 유리를 수출했고 새 공장을 연 뒤 해외 바이어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 복층 유리와 관련한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해 8월부터 본격 공사에 들어간다고 했다. 미국과 유럽산에 시장을 빼앗기고 있는 100층 이상 랜드마크 빌딩 등 고급 건축물에 쓰이는 최고급 가공유리 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을 내비쳤다.
천안=한장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