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현의 사막의 구도자들] 로마 황제의 잘못을 호되게 질책했던 수도자 암브로시우스

입력 2012-07-06 21:18

일반적으로 기억에 남는 로마황제를 들라면 아우구스투스를 꼽거나 미치광이 네로(Nero)를 거론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교(異敎) 로마제국 말고, 4세기 초반 이후의 기독교 로마제국에서 가장 유명한 황제는 누구일까. 콘스탄틴(혹은 콘스탄티누스·305∼337)이라는 이름을 한두 번 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13년 그 유명한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 신앙에 자유를 부여한 인물이다. 이후 자유·평등·사랑이라는 기독교 정신에 바탕을 둔 많은 법을 만들어 로마제국의 기독교화에 결정적으로 공헌한 인물이다.

그런데 콘스탄티누스의 그늘에 가려 잘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그만큼 유명한 황제가 있으니 바로 테오도시우스 황제(379∼395)이다. 테오도시우스(Theodosius)는 그 이름도 신실하다. ‘하나님께서’(Theo) ‘주신 자’(dosius)라는 뜻이다.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 신앙에 자유를 부여했다면 테오도시우스는 380년 2월 28일 오직 기독교 신앙만이 로마제국에서 유일한 합법적인 신앙임을 법으로 공포했다. 즉 테오도시우스 시대에 이르러 로마제국은 ‘기독교 국가’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 제국을 출범시켰던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수도적 삶을 살아가던 한 인물에게 호되게 질책을 당한 후에 회개의 눈물을 흘려야 했던 사건이 발생했다.

390년의 일이다. 당시 테살로니키(데살로니가)의 로마군 사령관은 부테릭이란 인물로 고트족 출신이었다. 그는 참모들과 함께 시민들을 착취했다. 이에 격분한 시민들이 반란을 일으켜 부테릭과 그 참모들을 돌로 쳐서 죽인 후에 그 시체를 끌고 거리를 행진했다.

이 소식을 접한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격노해 주민 3000명을 테살로니키의 원형경기장에 모아서 학살하라고 명령했다. 황제의 명령을 받은 전령은 테살로니키로 출발했다. 그러나 곧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주민 학살을 명령한 것이 지나친 것임을 깨닫고 두 번째 전령을 보내어 명령을 취소하려 했다. 그러나 두 번째 전령은 너무 늦게 테살로니키에 도착했다. 그가 도착한 때는 수천 명의 시민들이 이미 군인들에 의해 학살되고 난 이후였다. 당시 로마법은 사형을 명령하면 유예기간 없이 즉시 집행하도록 돼 있었다.

밀라노 교회를 이끌던 암브로시우스는 이런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황제에게 공개적인 편지를 썼는데 그 편지가 아직도 남아 있다. 암브로시우스는 본래 정치가 출신이었으나 밀라노 교회의 감독(주교)으로 선출된 후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독신을 선언했던 수도자이자 목회자였던 신앙인이다.

암브로시우스는 테오도시우스 황제를 향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당신에게 충고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요청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권면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경고합니다. 지금까지의 황제들 중 경건한 황제의 모범이 되었던 당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그토록 존엄한 황제의 권좌를 부여받은 당신이 수많은 무고한 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것을 알고서 나는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암브로시우스는 황제에게 사람을 보내 무고한 자들을 학살한 죄에 대해 밀라노 교회에서 공개적으로 참회하지 않는다면 황제를 출교(出敎)시키겠다고 위협했다. 로마제국이 아무리 기독교 제국이라고 해도 황제는 절대군주이고 황제의 말이 곧 법이 되는 시대였다. 황제를 향한 공개적 질책에 한술 더 떠 출교 위협을 운운하는 것은 암브로시우스로서는 목숨을 내 거는 결단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망설임 끝에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결국 밀라노 교회의 예배에 참여해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잘못에 대해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한다. 아울러 암브로시우스는 새로운 법을 요구했고 이렇게 해 390년 8월 18일 새로운 법이 공포된다. 황제 테오도시우스는 그 법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이전에 내가 내렸던 결정은 잘못된 것이었다. 앞으로 사형을 집행할 때에는 30일간의 유예기간을 두어야 한다. 이렇게 하여 무고한 자가 해를 당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이런 배경 하에 로마제국 역사상 최초로 사형선고에서 사형집행까지 30일간의 유예를 주는 새로운 제도가 만들어지게 됐고, 현대 사형집행 유예기간의 골격이 됐다.

지도자에 대한 맹목적인 순종은 또 다른 우상임을 역사는 증언한다. 사람의 계획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삼상 15:22 참조). 나단 선지자가 다윗 왕에게 이야기하기를, 어떤 부자가 자기 손님 접대를 위해 가난한 자의 암양을 빼앗아 대접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다윗은 그런 자에게는 사형이 마땅하다고 했다. 선지자 나단은 다윗을 향해 “바로 당신이 그 사람이다”(삼하 12:7)라고 선언했다. 구약의 선지자는 사라졌지만, 암브로시우스 같은 4세기 수도자들은 사라진 구약의 선지자들을 신앙의 스승으로 삼았다. 나단과 같은 선지자 ! 암브로시우스와 같은 지조(志操) 있는 신앙인 ! 바로 이와 같은 자들이야말로 시대가 목말라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고 그 누구이겠는가.

<한영신학대 교수·캐나다 몬트리올대 초청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