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언틸 더데이'…기독교공연문화 가능성 보다
입력 2012-07-06 16:21
[미션라이프] 지난 1일 서울 동숭동 엘림홀에서 막을 내린 뮤지컬 ‘언틸 더 데이(Until The Day)’는 기독교 작품으로는 근래 드물게 중소형 극장에서 2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사랑의 교회, 분당만나교회, 삼일교회에서의 초청공연까지 합하면 3만명 정도가 봤다. 관객 대부분이 크리스천이지만 비신자들도 많이 관람했고, 그들의 호평이 홈페이지에 이어지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기독교 문화를 향한 관심은 예전만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지하교회와 탈북, 인권 실태 등을 고발한 무거운 내용의 ‘언틸 더 데이’가 대박을 터뜨린 요인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성= ‘언틸 더 데이’는 지난해 7월 1일 260석 규모의 서울 충정로 문화일보홀에서 처음 선보일 때만 해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소재 자체가 ‘북한’ ‘지하교회’ ‘탈북’ ‘인권’ 등 너무 딱딱한데다 제작 과정에서도 예상외의 문제가 많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톱 배우의 주인공 캐스팅이 물거품됐고 협찬·후원도 뚝 끓겼다. 기획자가 제작비를 유용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러다보니 홍보가 제대로 될리도 없었다. 예정된 2개월의 공연 기간에 몇 백명 들어오면 다행이라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여기에 우연히 작품을 본 문화사역자들이 힘을 보탰다. 민들레영토 지승룡 대표, CCM 사역자 송정미 사모, 극동방송 진행자 유정현 전도사 등이 방송과 트위터 페이스북을 통해 ‘언틸 더 데이’를 홍보했다.
처음엔 이들도 반신반의했다. 기독교 관련 공연이라고 하면 ‘순교하는 마음으로 봐줘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달랐다. 무엇보다 완성도가 높았다. 감동적인 내용과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 뛰어난 가창력이 어우러졌다.
꽃제비의 등장으로 시작돼 내내 음울할 것이란 예상을 깨고 등장한 꽃봉우리 예술단의 경쾌한 운율은 반전의 재미를 더했다. 남여의 로맨스도 애틋함을 자아냈고 다양한 의상도 볼거리를 제공했다.
◇마음을 흔드는 분명한 메시지= 선명한 메시지도 주 성공 요인이다. 기독교 작품에는 ‘예수님을 전한다’는 분명한 주제가 있다. 그걸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관건이다. ‘언틸 더 데이’는 양심에 호소하는 쪽을 택했다. 아사(餓死), 총살형 등으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같은 민족의 아픔을 건드렸다.
“사회가 못 품는 탈북민을 교회가 돌봐야 한다.” 작품을 보고 많은 크리스천은 북한선교에 대한 비전을 갖게 됐다. 굳이 선교가 아니어도 각자 얻은 깨달음이 있었다. 한 관객은 “이웃을 돌아보지 못하고 내 문제만 생각하며 편하게 지냈던 나를 발견하고 후회했다”며 후기를 남겼다. 다른 이는 “북한을 생각하면서 작은 것 하나에도 감사해야겠다고 느꼈다”고 평했다.
◇사라져야 할 공짜문화= 대부분의 기독교 공연들이 할인권, 무료 초대권에 의존해 객석을 채웠던 것과 달리 ‘언틸 더 데이’는 유료 공연문화를 정착시켰다. 특히 최근 한달새 엘림홀은 연일 매진이었고 90%의 관객이 티켓을 구매했다.
‘기독교 문화=공짜’라는 등식을 관객 스스로 깼다. 극단희원의 김희원 대표는 “대중 공연은 비싼 값을 주고라도 보지만 기독교 작품은 ‘서로 은혜를 나눠야 한다’며 할인, 공짜표를 요청하는 분들이 많았다”고 했다. 그러나 “관객들 유료입장도 감사하지만 CD나 팜플릿을 구입하는 등 오히려 공연이 이어질수록 개인 후원자들이 늘었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수익금의 일부로 탈북민을 돕는 북한정의연대를 지원했다.
사실 기독교 문화사역에 매진하는 단체들은 대부분 열악하다. 그러나 그들이 갖고 있는 잠재적 재능은 누구보다 뛰어나다. 그 가능성을 보여준 게 ‘언틸 더 데이’였다. 라이프트리 공동체 대표인 유정현 전도사는 “기독교 공연문화를 향한 한국교회의 관심이 절실하다”며 “공짜표에 익숙하기보다 오히려 ‘문화헌금’ 봉투를 만들어 교회들이 제대로 된 기독교 공연 한편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