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영 장로 칼럼] 종교인과 신앙인 (9)
입력 2012-07-06 13:48
처음 만난 기독교인
우리 회사의 한 직원에 대한 이야기이다.
대구에서 자란 이 직원의 집안 식구들은 모두 불교 신자다. 친구들도 모두 기독교와는 거리가 멀었던 모양이다. 마흔 살이 넘도록 살면서 처음 만난 기독교인이 나라고 한다. 그는 나를 처음 봤을 때 신기한 사람으로 생각했었고, 거부감마저 심하게 들었다고 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는 이야기부터 미신적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사석에서 나누는 성경 이야기를 무척이나 거부했던 직원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그 직원의 막내아들을 가르치던 과외 선생이, 아들을 교회에 데리고 가겠다고 전화를 해왔더란다. 예전에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한다고 핀잔을 줄 만한 이야기였다. 공부나 잘 시키지 않고 엉뚱한 일을 한다고 한 마디 쏘아붙일 만한 이야기였는데, 그 날은 웬일인지 예수 믿는 사장처럼 아들도 부자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자신도 모르게 승낙했다고 한다.
그 직원은 아들이 몇 달 째 너무나도 열심히 교회에 나가기에, 무슨 이단에라도 빠졌는지 걱정이 되어 몰래 따라갔었다. 그곳은 예상 외로 작은 교회였다. 70여 명의 노인들 속에 자신의 아들이 진지하게 설교 말씀을 듣고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어느 날, 그 직원은 내게 찾아와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혹시 무슨 이단이 아니냐며 상담을 요청해왔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이단 같지 않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고 물질에 욕심 없이 말씀만 전하는 사람은 이단이 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 직원에게 조금 더 지켜보자고 했다.
나중에 그 직원은 휴가 기간 동안 휴가를 포기하고 교회에 나가 회개기도를 일주일 동안 했고, 방언을 받아 깊은 기도의 경지에 들어갔으며, 나보다 더 깊은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게다가 내게도 ‘사장님도 회개기도 하시고 방언을 받으시라’며 역전도를 하기에 이르렀다.
묘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60년이 넘도록 신앙생활을 해도 방언기도를 하지 못하는데, 불과 몇 달 만에 방언을 받고 몇 시간이 넘도록 기도를 해도 조금도 힘들지 않다고 하니 무척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방언은 초신자를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성경 말씀을 이해하고 나서는 그를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정말 크신 하나님의 은사는 예언도 방언도 아닌 한 구절의 성경 말씀이라도 깨달아 전하는 것, 그 깨달음을 널리 전하는 사람이야말로 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신기한 이야기는, 그 직원이 처음에 교회에 갔던 것은 부자가 되기 위해서였는데 ‘모두가 가난한 사람들뿐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마음이 행복한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다. 그 직원은 내게 ‘성경은 부자가 되는 말씀이 아니고, 세상은 광야와 같으니 세상 욕심을 버리고 살라는 말씀’이라는 설교를 듣고 마음속으로 솔직히 실망했으나, 마음은 어찌 그리 편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 직원의 막내아들은 이제 의과대학을 졸업할 때가 됐다. 솔직히 말해서 아들은 의과대학에 들어갈 성적이 아니었으나, 꼴찌로 간신히 턱걸이를 해 들어갔다고 한다. 가족들의 생활도 좋아져, 이제는 참 좋으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전도는 말로 하는 것도 있지만, 기독교인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잘 지키는 것도 큰 전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건국 초기 이승만, 김구, 안창호 등 기독지도자들의 모습에서 지금 기독교의 부흥을 이룬 원동력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좋은 행실이 하나님의 말씀을 흥왕하게 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만드는 전도 방법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아내 된 자들아 남편에게 순복하라. 아내의 그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다. 베드로전서 3장 말씀이다. 이 때 아내 된 자는 우리 믿는 성도들을 지칭할 수도 있고, 아내를 지칭할 수도 있다. 우리가 말보다 행동으로 먼저 하나님께 복종하는 모습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얻게 한다는 말씀으로, 나에게 깊은 감명을 주는 구절이다.
강덕영 장로/ 한국유나이트문화재단 이사장, 갈렙바이블아카데미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