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보육’ 재정 고갈] 정부 지원 ‘보육시설’ 대신 ‘부모 중심’으로 전환돼야

입력 2012-07-05 19:24


‘중단위기 맞은 무상보육 해법 없나’ 전문가 진단

지난 3일 김동연 기획재정부 2차관의 0∼2세 무상보육 대상 재조정 발언으로 무상보육 논쟁이 뜨겁다. 지방자치단체들의 예산 고갈과 맞물려 무상보육정책에 제동이 걸리면서 한정된 재원으로 모든 계층에 무상보육을 제공하는 것이 옳은지 논란이 일고 있다.

육아정책 연구자들은 ‘계층적 접근 방식이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국내 유일의 육아정책 전문연구소인 국무총리실 산하 육아정책연구소 서문희 이미화 두 선임연구위원에게 4개월 만에 중단 위기에 놓인 무상보육에 대해 물었다.

◇문제는 일하는 엄마!=두 사람은 “문제는 계층이 아니라 엄마의 취업 여부”라고 말했다. 주 양육자인 여성 노동시장에 대한 고려 없이 계층 논쟁은 무의미하다는 얘기다.

한국의 보육서비스는 영유아를 어린이집에 맡길 때 보육료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올해부터 0∼2세의 경우 계층과 무관하게 보육료 100%를 지원하고 있는데 내년에는 대상이 3∼4세로 확대된다. 현재 3∼4세는 하위 70%까지만 지원한다. 정책 결정이 전적으로 계층 단위로 이뤄지는 것이다.

이미화 위원은 “계층을 하나의 덩어리로 보고 여기는 주고, 저기는 빼는 식의 고민은 중요한 포인트를 놓치는 접근법”이라고 말했다.

한국처럼 이렇게 ‘무조건’ 주는 무상보육을 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복지천국 스웨덴에서도 ‘취업맘 주당 40시간, 전업주부 주당 15시간’으로 엄마의 취업 여부에 따라 무료 보육 서비스를 차등 지원한다. 일본에서는 양육자가 일을 하지 않으면 아예 어린이집에 입소할 수가 없다.

◇전업맘의 박탈감=0∼2세 무상보육은 집에 있던 아기들을 어린이집으로 쏟아져 나오게 했다. 사태를 해결하려면 전업맘들이 이런 선택을 한 이유를 이해해야 한다.

“처음에는 나조차 일하지 않는 엄마들이 왜 애를 어린이집에 보내나 의문이었다. 하지만 젊은 엄마들을 만나보니 이해가 가더라. ‘내가 일 안하고 싶어 노느냐’고 항변한다. 전업주부의 육아 스트레스가 취업여성보다 크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국가가 어린이집에 애를 보내야 돈을 준다고 한 거다. 제도가 주부들에게 박탈감과 갈등을 안긴 거다.”(서문희 위원)

그래서 전업맘들에게도 인센티브는 필요하다. 방법은 전업맘들이 진짜 필요로 하고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육아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현재 어린이집은 교사의 취업 형태가 종일제이기 때문에 3∼4시간 단위의 짧은 보육 서비스가 없다. 이걸 다양화해야 한다.

이 위원은 다양한 보육기관이 생긴다는 걸 전제로 양육수당과 시간제 보육서비스 이용권을 묶은 패키지를 제안했다. 서 위원도 “전업맘이 잠깐잠깐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 입장에서는 많은 투자가 필요하겠지만 모든 영아들이 어린이집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보다는 돈이 훨씬 덜 들 것”이라고 말했다.

◇누더기 보육정책=우리나라에서는 실수요자인 부모 대신 보육시설에 돈을 준다. 내년부터 부모에게 직접 돈을 주는 양육수당 지급대상이 하위 70%까지 확대되긴 하지만 보육시설에 보낼 때 받는 돈의 20∼30%(0∼2세 기준)도 안 된다.

서 위원은 “보육시설을 중심으로 돈을 풀다보니 풀린 돈이 수요자인 부모에게 가지 않는다. 출산력을 높이려고 돈을 풀었는데 시장이 다 흡수해 버린다”고 비판했다.

해법은 어려운 게 아니다. 정부 지원을 보육시설 대신 부모 중심으로 바꾸고, 보육시설을 다양화하고, 국공립어린이집을 많이 세우면 된다. 또 민간 어린이집의 진입장벽을 높여야 한다. 문제는 실천이다. 서 위원은 “정부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사이 민간 어린이집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무시할 수 없는 정치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 쉽지는 않다. 그래도 큰 틀에서는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