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의술로 삶의 기술로… 일상에 들어온 철학
입력 2012-07-05 18:27
올여름 서점가는 철학서를 권하는 분위기다. 이번 주 신간에는 유독 철학서가 몰렸다. 철학자의 사유세계나 철학개념을 쉽게 설명해주는 교양서도 있지만, 아무래도 호소력을 갖는 것은 일상 속으로 걸어 들어온 육화된 철학책이다.
영국에서 실용철학을 전파하는 줄스 에반스의 ‘철학을 권하다’(더퀘스트)와 국내에서 철학 멘토로 불리는 황광우씨의 ‘철학 콘서트 3’(웅진지식하우스)가 이런 구미에 맞는 책이다.
철학을 권하다 /줄스 에반스/더퀘스트
# 철학, 마음의 ‘식스팩’을 만드는 훈련
‘철학을 권하다’에서 저자는 철학이야말로 삶의 기술이라면서 철학이 있어야 할 곳은 강단이 아니라 거리와 직장, 일상의 공간이라고 말한다. 이는 영국 최대 규모 커뮤니티인 런던필로소피클럽(London Philosophy)의 창립자이자 삶을 위한 철학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의 개인 경험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저자는 대학 시절 극심한 사회불안과 우울증을 앓았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는다. 이 때문에 인지행동치료를 받은 그는 이 치료에 고대 철학이 유용하게 쓰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즉 세상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그리고 삶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등에 관한 한 사람의 철학은 그의 정신 건강 및 육체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서로 다른 믿음은 서로 다른 감정을 낳고, 서로 다른 정치 이데올로기는 서로 다른 형태의 정서적 질병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예컨대 저자는 자신이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에 너무 많은 가치를 두었고, 이런 철학 탓에 사회불안 장애를 얻게 됐다고 고백한다. 고대 철학을 통해 자신의 무의식적 가치관과 거리두기를 하면서 자신의 철학을 바꾸었고 이후 건강도 달라졌다고 한다. 그래서 철학은 자기 스스로에게 행할 수 있는 의술의 한 형태이며 마음의 근육을 기르는 훈련이라고 단언한다.
“옛 사람들은 철학을 온몸으로 사용하는 운동으로, 교실에서 뿐만 아니라 체육관에서 배우고 연습하는 것으로 여겼다.”(7쪽)
일상의 철학, 삶을 사랑하는 기술로서의 철학을 위해 저자는 소크라테스 등 12명의 고대 철학자들을 초빙한다. 정서장애는 믿음으로 인해 생기지만 그 믿음은 우리 사회, 그리고 사회의 경제·정치적 구조와 가치에서 오며, 따라서 철학자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에 어떻게 개입해야 할지를 알려주고 있어서다.
저자는 우리가 사회에 개입할 수 있는 방법을 철학자와 그들의 철학에 근거해 분류한다. 저자의 통찰이 돋보이는 부분은 바로 이 대목이다. 2000년 넘게 이어져온 가르침인 고대 철학이 개인적인 삶을 뛰어넘어 21세기 정치 사회와 만나는 지점을 정확히 포착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기꺼이 넝마생활을 했던 견유학파 디오게네스의 철학을 남의 시선을 벗어나 권위에 저항하는 기술로 해석한다. 그리고 2011년 금융자본주의에 저항해 미국 뉴욕 월가에서 영국 런던 세인트폴 대성당 앞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서 텐트를 치고 점령운동을 벌였던 이들 운동가야말로 극심한 생존경쟁에 들어가기를 거부했던 디오게네스의 후손이라고 비유한다. 또한 자본주의에 대한 무정부주의적 비판은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의해 그동안 가려졌으나 공산주의 붕괴 이후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고 역사적 해석까지 내린다. 서영조 옮김.
철학콘서트 3/황광우/웅진지식하우스
# 철학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름
‘철학 콘서트 3’ 역시 삶의 기술로 철학을 논하고 있지만 철학자들의 철학보다는 철학자 그 자체에 관심이 가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저자는 전작 ‘철학 콘서트 1’ ‘철학 콘서트 2’에서 ‘나’와 ‘세계’를 이해하는 철학을 소개했다면, 완결편인 이 책에서는 공자, 묵자, 장자,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 동서양 철학자들을 넘나들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고대인의 사유를 정리했다.
그러면서 이들 철학자에 대해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낸다. 중국 고대 철학자 장자를 다루면서 은자로서의 삶이 갖는 외로움에 연민을 보낸 것이 그렇다. 유신 시절 그는 사회운동가 함석헌 선생을 통해 처음 장자를 알게 됐다. 이 엄혹한 시절에 웬 장자 타령이냐는 식의 불만을 가졌던 기억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던 그는 세월이 흘러서야 진정한 자유인으로의 장자의 진가를 발견했음을 고백한다.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던 위왕의 초빙도 거절하고 차라리 쓸모없는 사람이 되기를 원했던 장자였기 때문이다. 역성혁명을 설파한 맹자도, 천하를 주유했던 공자도 시스템 안에서 인정받기를 원했지만 장자는 그 시스템을 비웃으며 바깥으로 나가버린 이였다고 해석한다.
로마의 공화정을 옹호해 카이사르의 독재와 맞서 싸운 키케로를 다루면서 그가 펼친 노년예찬에 주목한 점도 이채롭다. 청춘예찬이 아니다! “그러나 다른 종류의 노년도 있다네. 조용하고 순수하고 우아하게 보낸 인생의 평온하고 부드러운 노년 말일세. 저술 활동을 하다가 여든하나에 세상을 떠난 플라톤이 그랬고, 아흔넷에 ‘판아테나이코스’라는 책을 쓰고서 거의 5년을 더 산 이소크라테스의 노년도 그러했다네.”(70쪽) 저자는 키케로의 입을 빌어 플라톤을 철학자로서가 아니라 노년의 이상적 삶을 산 모델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칸트는 또 어떤가. 칸트는 시계추처럼 정확했던 삶에 대한 에피소드 때문에 무미건조하고 괴팍한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런 칸트가 하루 중 가장 좋아했던 시간은 주변 사람들과 환담할 수 있었던 점심시간이었다. 두 번 결혼을 시도했지만, 천성 같은 느린 판단 때문에 실패한 사례를 끌어오면서 그에게 인간미를 부여한다.
이런 결점 탓에 칸트의 사유는 더욱 매력을 발한다. 데카르트의 합리론과 흄의 경험론 세례를 받았지만 철학의 이 두 극단을 거부했던 칸트였다. 그리고 마침내 독단적인 합리론자와 회의적인 경험론자 모두가 공통적으로 범했던 인식상의 오류를 끄집어냈다. 칸트의 발견은 철학에서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으로 평가받는데 이를 소개한 ‘순수이성비판’ 내용을 저자는 쉽게 설명해준다.
저자는 두툼한 책 속에 근엄한 표정으로 등장하는 철학자들을 우리처럼 울고 웃는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고나 할까. 그러면서 그들의 철학이 버무려지며 역시 비범성을 갖춘 철학자임을 다시금 인식케 하는 재주가 있다. 그래서 철학 콘서트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