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득 이어 검찰 앞에 선 정두언… 이명박 정권 창출 1등 공신

입력 2012-07-05 19:25

5일 검찰에 출두한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에게는 ‘이명박 정권 창출의 1등 공신’이란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대다수 의원이 박근혜 전 대표를 밀 당시 그는 이상득 전 의원, 이재오 의원과 함께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다. 이 대통령의 의중을 꿰뚫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직언도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를 이 대통령의 ‘복심(腹心)’이자 ‘왕의 남자’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의 파워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뜨면서 위축되기 시작했다.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 등이 전면에 부상하면서 그에 대한 견제도 본격화됐다. 2008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이상득 전 의원의 불출마를 요구하는 ‘55인 서명 파동’은 권력투쟁의 신호탄이었다. 이후 이 전 의원과의 투쟁에서 번번이 졌고, 결국 이 대통령과의 관계까지 소원해졌다. 다른 개국 공신들이 승승장구할 동안 장관은커녕 모든 요직에서 배제됐다. 심지어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로부터 사찰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정 의원은 2010년 7·14 전당대회에서 각종 견제를 무릅쓰고 최고위원으로 당 지도부에 입성하면서 정치적 재기를 노렸다. 이 대통령은 물론 현 정부에 날카롭게 각을 세우며 쇄신파 맏형으로 자리 잡았다. 그동안 정치권에서는 그에 대한 검찰 수사설이 떠나지 않았고, 그때마다 정 의원은 “검찰에서 뒤져봐도 나올 게 없다. 나는 괜찮다”고 응수해 왔다. 하지만 그렇게 견원지간처럼 으르렁거리던 이 전 의원과 같은 시기, 비슷한 혐의로 검찰 포토라인에 서는 운명이 됐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