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남극 촛대바위
입력 2012-07-05 18:48
촛대와 닮은 기암괴석을 촛대바위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는 강원도 동해시 추암촛대바위, 경북 울진군 울진촛대바위, 울릉군 울릉도 촛대바위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추암촛대바위가 일반에 널리 알려져 있다.
추암촛대바위에 얽힌 전설 한 토막. 추암에 살던 한 남자가 소실을 두었다. 시앗을 보면 길가의 돌부처도 돌아앉는다고 했던가. 본처와 소실 간의 투기가 날로 심해졌다. 급기야 하늘이 벼락을 내려 남자만 남겨놓았다. 이때 홀로 된 남자의 형상이 촛대바위라는 것이다. 촛대바위 주변에는 거북바위 두꺼비바위 코끼리바위 등 기암괴석이 널려 있다. 조선시대 한명회(韓明澮)가 이 바위군(群)의 절경을 보고 미인의 걸음걸이를 뜻하는 능파대(凌波臺)라고 불렀다.
기자는 취재차 세종과학기지를 찾아간 1999년 2월 1일 남극에서 촛대바위를 보았다. 촛대바위는 세종기지에서 맥스웰 만 해변을 따라 2㎞쯤 떨어진 해안에서 맘껏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주변에 서식하는 수많은 펭귄이 바다에 나갔다가 돌아올 때 랜드마크로 삼아도 될 것 같았다. 세종기지 대원들이 이름을 지어준 이 바위는 추암촛대바위와 비슷했다.
대원들은 1988년 세계에서 18번째로 남극에 과학기지를 건설한 뒤 남극 지형에 한국식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리고 국내외 홍보를 강화한 끝에 지난해 촛대바위 백두봉 등 한국 지명 17개가 남극 국제지명으로 등록됐다. 올해에도 인수봉 아우라지계곡 세석평원 울산바위봉 미리내빙하 등 10개가 남극지명사전(CGA)에 등재된다.
대원들이 남극 지형에 한국 지명을 부여한 이유는 뭘까. 애국심의 발로가 아닐까 싶다. 한국 지명이 CGA에 수록된다고 영토가 넓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해당 지형을 방문한 외국인이 작명 이유를 알게 된다면 한국을 또렷이 기억하게 될 것이다. 전 세계에 걸려 있는 우리 기업의 광고를 보고 한국을 떠올리는 것처럼.
보통 12개월 이상 그리운 가족·친지들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대원들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한국 지명을 붙였을 수도 있다. 남극 인수봉에 오르면서 북한산 인수봉을 오를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적적함을 달랠 수 있었으리라.
CGA에는 23개국에서 등록한 지명 약 3만7000개가 수록돼 있고, 미국 영국 등 8개국이 올린 이름이 전체의 93%에 달한다. 한국도 세종기지와 2014년 완공될 장보고과학기지를 중심으로 남극 지명 발굴에 더욱 노력하기를 기대한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