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룡 목사의 시편] 부활은 과학적으로 믿을 수 없다?

입력 2012-07-05 18:19


전에 미국에서 모 신학대학 교수님을 만난 적이 있다. 그 교수님과 식사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중에 이런 말을 들었다. “나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부활은 과학적 사고로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충격이었다!

과연 예수님의 부활은 과학적 사고로 믿을 수 없는 것인가? ‘과학적 사고로 믿을 수 없다’는 주장에서 ‘과학적 사고’란 어떤 사상을 말하는 것인가? 이때 과학적 사고란 자연주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 과학적 사고를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무신론적이며 진화론적 사고에 근거한 과학을 말한다.

그런데 과학적 사고는 무신론적 입장에 근간을 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과학의 긴 역사에 있어서 유신론적 과학적 사고가 더욱더 탄탄한 뿌리가 형성되어 있다. 원래 플라톤이 대화록에서 과학적 사고를 말할 때, 그는 신의 영역을 인정하면서 설계와 창조 개념의 중요성을 말했다. 이러한 유신론적 사고가 신플라톤주의나 스토아 사상으로 이어졌고, 중세의 과학에서도 설계와 초자연적 이성의 개입의 개념을 인정하였다. 계몽주의 시대와 근대의 과학자들도 유신론적 세계관으로 과학을 했다. 케플러, 갈릴레오, 데카르트, 그리고 뉴턴도 과학에서 신의 섭리를 인정하였다. 또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수많은 서구 유명 대학 과학자들은 유신론적 사고로 과학적 연구에 몰입하였다. 따라서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는 유신론적 과학은 오랜 과학의 역사에서 거의 항상 과학으로 인정되어 왔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과학에서 무신론적 과학이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는가? 다윈의 진화론과 자연주의 철학이 결합되면서 사람들은 ‘방법론적 자연주의’만 과학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방법론적 자연주의란 ‘이 세상의 자연 현상들을 실험하고 설명할 때 반드시 자연현상 안에서 자연적 요인으로만 설명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것만이 과학이며 하나님의 섭리와 개입을 배제하는 것이 과학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무신론적 과학적 사고가 20세기 초·중반에 주류를 형성하면서 유신론적 과학은 뒷전으로 밀리게 되었다.

‘부활은 과학적 사고로 믿을 수 없다’는 주장은 무신론적인 과학적 사고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무신론적인 과학 사고로 볼 때, 세상에 기적이 일어나고 눈앞에 홍해가 갈라지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더라도, 그런 현상에 하나님의 역사를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신론적 사고에서 볼 때, 하나님이 존재하기 때문에 죽은 사람의 부활은 당연히 가능하며 지극히 합리적인 믿음이다. 유신론적 과학의 입장에서, 예수 부활을 믿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신앙이다.

그리스도인이 세속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거짓에 속고 그 영혼도 망한다. 하지만, 성경적 세계관으로 세상 살기를 훈련한다면 우리는 가장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거짓 믿음과 자만을 내려놓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라!

(서울 큰나무교회 담임·기독교 변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