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신인식 (10) 1994년 세계 최초 귀로 읽는 ‘종달새 도서관’ 열어
입력 2012-07-05 18:18
나에게는 아직 하지 못한 숙제가 하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나라를 지키는 일은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난 군대에 가지 못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았다. 초등학교 전화교환원 경력을 세워 통신병으로라도 입대하게 해달라고 몇 번이고 졸랐지만 소용없었다. 군대 가지 못한 아쉬움을 4년 동안의 군목생활로 대신했다.
그런데 그 꿈을 잠시나마 이룰 수 있었다. 2010년 10월 시각장애인들을 모아 병영훈련 체험을 했다. 나를 포함한 37명의 지원자가 1박 2일간 김포 청룡부대에 입대했다. 첫날은 PT체조 24개 동작을 다섯 개씩 소화했고 다음날엔 부대 인근의 문수산을 빠른 걸음으로 오르내리는 산악행군을 했다. 개인 사격은 공포탄 10발을 지급받아 쏘았다. 내무반 침상에서 밤을 보내고 사병들과 똑같은 식사를 했다. 40대 이상인 사람은 나 혼자였지만 정말 환상적인 체험이었다. 한동안 “나는 해병대 출신이야”라는 농담을 하고 다녔다. 진짜 해병대원 분들이 들으신다면 포복절도할 일일 것이다.
초등학교에 늦게 입학한 나는 눈 대신 손가락 끝으로 점자책을 읽었다. 공부에 목이 말랐던 터라 독서량이 많았다. 하지만 눈으로 읽는 것에 비하면 정보 흡수가 한없이 느렸다. 신학대학시절, 오픈 북 시험 때가 기억났다. 다들 책을 펼쳐들고 답을 쓰는데 책이 있어도 볼 수 없어 너무 속상했다. 누가 옆에서 읽어주면 좋겠다 싶었다.
시각장애인에게 언론보도를 ARS(자동음답시스템) 서비스로 들려주거나 기독교 찬송가와 선교 내용을 들을 수 있는 음성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시각장애인들의 정보접근성을 돕기 위한 도구로 ARS를 떠올린 것은 나의 아픈 경험 때문이다. 자금난으로 폐간해야 했던 ‘사랑의 메아리’가 바로 테이프에 녹음해 귀로 듣는 잡지였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책 말고 다른 형태의 책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했다.
이런 구상을 1994년에 실천했다. 은행에서 5000만원을 대출받아 세계 최초의 무형(無形) 도서관 ‘종달새 도서관’을 서울 회현동에 열었다. ‘종달새’란 이름은 쉴 새 없이 노래하는 종달새의 이미지에서 갖고 온 것이다. 당시 일간지 2종과 주간지 4종을 날마다 낭독자 다섯 분이 녹음했는데, 신문 하루치를 녹음하면 12시간 분량이었다. 녹음 시간 때문에 아침에 배달된 신문은 저녁이 돼야 음성서비스가 가능했다.
하나님께선 좀 더 좋은 방법을 연구하게 하셨다. 동료와 함께 2년간의 연구 끝에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기사 내용을 자동으로 음성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전화를 이용한 음성 포털 서비스 제공 시스템 및 그 방법’으로 특허도 받았다. 그래서 2008년부터는 무려 58개 신문·방송과 12개 월간지를 서비스하고 있다. 이용자도 하루 5000명에 이른다. 국내 어디서 걸든 이용자가 시내 통화요금으로 이용할 수 있다. 이용자들 사이에 “애인 없이는 살아도 전화 없이는 못 산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인기이다.
시각장애인들은 이동에 제한이 많고 점자로 돼 있는 책, 공문서나 표지판이 별로 없어 문자활동에 난관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하지만 점자는 배우기가 어려워 시각장애인 중 87.1%가 점자를 못 읽고, 후천적 장애인인 경우엔 극소수만 점자를 읽을 수 있다.
국내 40여 곳에 이르는 점자도서관에서 점자를 읽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음성도서 등을 제공하지만 배달체계나 이용면에서 불편한 점이 많다. 이에 비해 종달새 전화도서관은 이용자가 전화만 걸면 되므로 편리하고 즉각 정보를 접할 수 있어 시간도 절약된다.
그러나 종달새전화도서관의 운영은 쉽지 않다. 서울시와 중구청에서 한 해 6000만원을 지원받지만, 실제 운영에는 4억원이 들어가므로 독지가들의 도움과 음악회 수입 등으로 메우는 실정이다. 자치단체나 기업에서 좀 더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
정리=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