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 앞둔 문학청년 ‘파장과 순환의 아우라’… 황광수 평론집 ‘끝없이 열리는 문들’

입력 2012-07-05 18:29


“어느 날, 김정환과의 술자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황현산이 말했다. ‘삼십 년 후에는 김정환 연구 붐이 일거야.’ 나는 왜냐고 묻지 않았다. 한 세대가 지나 우리 비평계가 탈근대적 조건 속에서 시의 존재 이유에 대한 뼈아픈 성찰을 하게 된다면, 지금 우리가 낯설게 경험하고 있는 김정환의 시세계를 다시 눈여겨보게 될 가능성은 커질 수밖에 없으리라는 생각이 금세 지펴왔기 때문이다.”(86쪽)

한국문학에 전례 없는 전작 장시 ‘드러남과 드러냄’(2007), ‘거룩한 줄넘기’(2008), ‘유년의 시놉시스’(2010)를 3년 만에 완성한 마력의 소유자 시인 김정환에 대한 문학평론가 황광수(68·사진)의 코멘트이다. 귀갓길, 그의 곁에 불문학 전공의 비평가 황현산이 있어서는 아니었겠지만 이 말 끝에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1917년 이후 삼십 년이 지난 시점에서 평론가들에게 재발견된 에즈라 파운드가 떠올랐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망각과 재발견 사이의 메커니즘에 현혹될 필요는 없다. 재발견은 발견을 전제할 때만 가능한 것이니까.”

황광수의 신작 평론집 ‘끝없이 열리는 문들’(자음과모음)은 10년 만의 소출이다. 그러니만큼 강호의 문사들과 진검승부를 벌인 흔적이 글 꼭지마다 그득하다. 장시를 쓴 김정환의 내공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그 세 권의 장시집을 대여섯 차례나 정독하고 해설을 쓴 황광수 역시 괴력의 소유자라 할 것이다.

그만큼 김정환의 장시집은 존재의 전이를 체험케 하는 보기 드문 텍스트인데 어차피 승자 독식이 횡행하는 문단 생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멀찌감치 대시인의 도래를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그의 비평적 도마 위에 올랐던 소설가 김훈 조정래 이문구 황석영 윤후명 임철우 오수연 구병모 김지우 서성란, 그리고 시인 백석 설정식 김초혜 신대철 고운기 신용목 등의 면면만 보더라도 그의 기준에서 볼 때 우리 문학의 큰 재목이 아니면 붓을 대지 않는 견결함이 느껴진다.

초록은 동색이라 했으니 그 많은 문인들에 대한 평문을 한데 묶으면서 그는 ‘파장과 순환의 운동성’이라는 제목의 머리말을 앉혀 놓았다. 그 파장과 순환의 아우라에 젖어들고 싶은 분들께 일독을 권한다. 그나저나 2년 뒤 칠순이라는 나이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그의 글은 젊고 외모에서는 여전히 세월을 잊은 청년이 맴돈다. 지식인이기 전, 문학노동자로서의 근육이 그만큼 탄탄하다는 증거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