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행동하는 양심’ 문약한 지성에 경종… ‘역사스페셜’

입력 2012-07-04 19:31


역사스페셜(KBS1·5일 밤 10시)

조선 중기인 1501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난 남명(南冥) 조식(1501∼1572)은 평생 벼슬길에 오르지 않고 초야에 은둔해 학문에만 정진한, 이른바 처사(處士)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그는 누구보다 학문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선비로서의 언행에도 항상 신중을 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예컨대 그는 늘 몸에 ‘성성자(惺惺子)’라고 불린 방울을 달고 다녔는데, 이유는 걸을 때마다 그 소리를 들으며 스스로 경계하고 반성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조식은 사사로운 욕심이 생기면 자기 자신을 단칼에 베어버리겠다는 일념에서 ‘경의검(敬義劍)’이라는 칼도 차고 다녔다.

사회적으로도 그는 상소를 올려 타락한 왕권을 질타하고, 이론만 앞세운 채 현실을 외면하는 학자들을 통렬히 비판한 당대의 ‘행동하는 양심’으로 유명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제자 50명이 의병장이 돼 전장에 나섰던 것도 이론보다 실천을 중요시한 스승의 가르침 때문이다. 방송은 이처럼 대쪽처럼 올곧은 선비였던 그를 통해 우리 시대에 진정 필요한 지성의 의미를 되짚어본다.

제작진은 이와 함께 조식의 ‘지리산 사랑’에 대한 에피소드들도 담아냈다. 권력에는 한 줌 욕심이 없었던 조식이지만, 그는 등산로가 잘 닦인 지금도 오르기 쉽지 않은 지리산을 12번이나 등반했을 만큼 지리산을 좋아했다. 61세가 돼 더 이상 지리산에 오를 수 없게 되자 그는 천왕봉이 보이는 곳에 집을 짓고 삶의 마지막을 지리산과 함께 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