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통 자를까 꼬리 자를까… 靑 밀실문책 고민

입력 2012-07-04 21:53


청와대가 4일 한·일 정보보호협정 ‘밀실 처리’ 관련자들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겠다고 밝혔지만, 그 칼날이 어디까지 미칠지 예단하긴 힘든 상황이다.

현재로서는 사태 조기 해결을 위해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과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 중 1명이 책임지고 물러나는 카드가 될 공산이 크다. 이명박 대통령의 중남미 순방에 동행하지 않고 국내에 남아 국무회의 비공개 처리를 총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김 기획관이나 밀실 처리 실무를 주도한 외교부 수장인 김 장관 모두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김 장관도 국회 개원 인사차 새누리당 소속 이병석 국회부의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통령께 피해가 가지 않고, 누가 되지 않는 길이 뭔지 숙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이 부의장 측이 전했다. 민주통합당 소속 박병석 국회부의장도 만났다.

현재 청와대 내부에서는 현 정부가 질 부담이 작지 않기 때문에 다른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기획관은 현 정부 출범부터 외교안보정책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김 장관은 대통령 임기가 5개월여 남은 상황에서 장관 교체에 따른 정치적 부담이 너무 크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 때문에 청와대가 외교부와 국방부 등 실무진 선에서 ‘면피성’ 처벌을 통해 ‘꼬리 자르기’를 시도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실제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전날 협정의 국무회의 비공개 안건 상정 실무자인 조세영 외교부 동북아시아국장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협정 밀실 처리 본질과는 큰 관련이 없는 조병제 외교부 대변인도 “청와대가 시켜서 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같은 날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안호영 외교부 제1차관이 이날 “지난달 22일쯤 ‘대외주의’ 안건으로 국무회의에 상정한다는 보고를 조 국장으로부터 받았다”면서 “해외 출장 중이었던 김 장관은 비공개 국무회의 처리에 대해 보고받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밝힌 점도 같은 맥락으로 보일 수 있다.

외교부 내부에서는 강한 반발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당장 조 국장도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청와대에서 조 대변인과 조 국장 2명을 ‘희생양’ 삼기로 결정됐다는 흉흉한 소문도 돌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지난 2월 외교부 간부가 연루된 씨앤케이(CNK) 주가조작 사건 여파로 차관 2명이 동시 교체된 사례가 떠오른다”며 “장관이 자기 후배들에게 책임을 미루는 모양새가 재연될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성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