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의구] 7·4 남북 공동성명
입력 2012-07-04 18:49
“실은 제가 지난 5월 박정희 대통령의 뜻으로 평양에 갔다 왔습니다.”
1972년 7월 4일 오전 10시 서울 이문동 중앙정보부 강당에 선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허두를 떼자 기자회견장은 흥분에 휩싸였다. 그는 이어 분단 이후 첫 남북 대화의 산물인 공동성명 전문을 읽어 내려갔다.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1972년 5월 2일부터 5월 5일까지 평양을 방문하여 김영주 조직지도부장과 회담을 진행하였으며, 김영주 부장을 대신한 박성철 제2부수상이 1972년 5월 29일부터 6월 1일까지 서울을 방문하여 이후락 부장과 회담을 진행하였다.”
기자회견 내용은 요즘 말로 표현하면 ‘문화충격’이었다. 6·25전쟁 휴전이 20년도 되지 않았고, 청와대를 노린 북한 특수부대가 1·21사태를 일으킨 지 5년도 안 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북한 인민군을 손발톱을 세운 늑대로, 북한에서도 미군을 승냥이로 그리던 때였다. 그런데 대북 정보를 총괄하는 중정부장이 북으로 건너가 합의서까지 만들었다니 경천동지할 일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중정부장이 김일성을 두 차례 만났고, 북한 박성철 부수상도 박 대통령을 한 번 만났다는 내용이었다.
7·4 남북공동성명이 나온 배경을 놓고 여러 해석들이 있다. 미·중 수교로 대표되는 동서긴장 완화 분위기에 구색을 맞추려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고, 국제정세 변화 속에 남북이 살길을 찾으려 했다는 의미 부여도 있다. 성명이 나온 지 반년도 안 돼 남한 정권은 대통령에 초헌법적 권한을 부여하는 10월 유신을 선포했고 북한은 주체사상을 지도원칙으로 한다는 구절을 담은 사회주의 헌법 개정을 단행하면서 다시 남북 대결 양상이 전개됐다. 이 때문에 남북 권력자들이 권력체제 강화를 위해 일시적으로 야합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4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자주·평화·민족대단결 원칙과 상호비방 중단 및 남북 직통전화 설치 등의 의제는 이후 남북 대화의 기조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중정부장은 당시 “대화는 전쟁 못지않은 대결”이라고 말했다. 대화 단절과 복원이 반복될 남북 관계를 예견한 듯한 발언이다. 최근 공개된 73년 루마니아 비밀 외교문서를 보면 북한이 대화 분위기 속에서도 남한 내부 분열을 계속 획책했음을 보여주는 북한 인사의 발언이 나온다. 남북 최고 권력자의 지시로 대화의 물꼬가 터지더라도 물밑에서는 여전히 대결이 진행 중인 씁쓸한 남북 대화의 실상에 관한 증좌 중 하나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