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베일 벗는 말라티아 속살, 눈이 부시다

입력 2012-07-04 21:45


그들은 왜 산새도 날아들기 힘든 말라티아의 레벤트 협곡 절벽 동굴에 보금자리를 틀었을까. 광활한 대지를 마다하고 그들은 무엇 때문에 바위산에 동굴을 뚫고 깎아지른 절벽에 나무다리를 놓아 길을 만들었을까. 천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전쟁도 사라졌지만 왕의 후손인 60대의 슈크르 쿠르트씨는 왜 아직도 동굴의 삶을 고집하고 있을까. 난생 처음 베일을 벗기 시작한 말라티아의 속살이 강렬한 인상으로 여행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살구의 도시’로 유명한 터키 말라티아는 여행자들에게 아직은 낯선 고장이다. 동서문명의 교차로인 이스탄불과 기묘한 바위가 산재해 ‘요정의 굴뚝’으로 유명한 카파도키아, 그리고 사도 바울의 전도여행지인 에페소스 등 관광자원이 무궁무진한 터키에서 동남부 아나톨리아(터키의 아시아 쪽)에 위치한 말라티아는 변방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말라티아의 속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런 편견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이름조차 생소한 말라티아는 고대의 교통요충지. 기원전 2000년 히타이트인들은 물론 초기 아시리아인들도 이곳에 정착했다. 실크로드에 위치한 말라티아는 페르시아, 폰투스 왕국, 카파도키아 왕국의 지배를 거쳐 기원전 66년에 로마의 영토로 편입됐다. 그 후 아랍과 셀주크투르크, 오스만제국, 티무르의 지배를 받다 1515년에 다시 오스만제국 밑에 있었다.

말라티아 여행의 출발점은 옛 시가지인 에스키 말라티아에 위치한 카라반 사라이. 실크로드를 따라 40㎞마다 세워진 대상(隊商)들의 숙소 중 하나로 1637년에 건축된 카라반 사라이는 최근 주민들의 공방으로 거듭났다. 숙소는 낙타 대신 자동차를 타고 찾아온 나그네와 주민들이 소통하는 공간.

카라반 사라이에서 시작되는 밧탈가지 골목은 공공미술을 도입한 문화의 거리. 깨끗하게 단장한 골목길을 따라 비록 낡았지만 고풍스런 집들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신기하게도 주택의 대문은 한옥의 대문과 너무 닮았다. 한국인 관광객을 졸졸 따라다니며 살구를 건네고 같이 사진을 찍자고 말을 거는 천진난만한 아이들, 담장 아래 소담하게 뿌리를 내린 접시꽃 등이 한국의 시골마을을 연상하게 한다.

터키인들의 한국사랑은 특별하다. 한국전쟁 참전과 2002년 한·일월드컵 때 한국인들의 열띤 응원을 기억하는 터키인들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굳게 믿고 있다. 말라티아 주지사도 예외가 아니다. 아들이 대구의 모 대학에서 유학을 하고 있다는 울위사란 주지사는 아들을 모델로 백화점 전광판에 제작한 한국사랑 동영상 ‘내가 한국을 사랑하는 이유는 하루하루가 역동적이기 때문이다(Everyday is another reason why I love Korea)’를 하루에 몇 차례나 내보내고 있다. 인구 30만 도시에서 19만 명이 이 동영상을 본 때문인지 ‘꼬레’에서 온 여행자들은 어디를 가든지 환영을 받는다.

말라티아 속살은 대부분 시내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위치한다. 8m 높이의 지층에 기원전 3000년부터 기원전 1600년까지 7개 시대의 문명이 층층이 새겨진 아슬란테페 유적지도 그 중 하나. 이곳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에는 인류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인 유프라테스 강이 유유하게 흐르고 있다. 해질 무렵 호수처럼 넓은 강과 하늘을 붉게 채색하는 노을을 보고 있노라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여행을 떠나는 감상에 젖게 된다.

세계적 여행안내서인 론리 플래닛은 물론 인터넷에서도 검색되지 않는 악차다흐 시(市)의 레벤트 협곡은 말라티아가 숨겨놓은 보석 중 보석. 말라티아에서 자동차로 30∼40분 거리에 위치한 레벤트 협곡은 미국의 그랜드캐니언과 터키 카파도키아의 ‘요정의 굴뚝’을 합쳐 놓은 듯 기기묘묘한 절경을 자랑한다.

6500만 년 전 바다가 융기한 후 오랜 세월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레벤트 협곡은 해발 1400m 지점에 위치한 고원. 지질학적으로 의미 있는 포인트가 28곳이나 돼 ‘지질학 교과서’로 불린다. 겨울에 쌓였던 눈이 녹아 흐르는 봄을 제외하고는 늘 건천인 강바닥까지의 깊이는 240m. U자 혹은 V자 협곡이 강바닥을 따라 28㎞나 이어져 트레킹을 즐기기에도 좋다.

협곡을 오르내리는 트레일과 도로의 길섶은 온갖 야생화가 피어 천상의 화원을 연상하게 한다. 눈길 닿는 곳마다 고깔모자 형태의 산봉우리와 기기묘묘한 바위기둥들이 줄을 잇고, 절벽에는 자연동굴과 인공동굴이 검은 입을 벌리고 있다. 기이한 형태의 크고 작은 동굴들은 집이나 무덤, 교회나 식량창고로 이용되던 곳.

레벤트 협곡에는 요즘도 동굴집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규츠쿠르네 마을의 슈크르 쿠르트(64)씨 일가가 그 주인공. 한때 이곳을 지배했던 왕의 후손으로 전쟁을 피해 천년 동안 조상 대대로 동굴에서 살았다는 그는 지금은 말라티아 시내에 살고 있지만 동굴에서 살았던 젊은 시절의 기억을 잊지 못해 세간을 갖춘 동굴집을 수시로 찾는다.

큐츠쿠르네 마을에서 토흐마 계곡을 거쳐 다렌데까지의 협곡과 계곡에는 모두 1000여 개의 동굴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동굴이 막히면 터널을 뚫고 길이 끊기면 나무다리를 놓아 동굴과 동굴을 연결하는 길을 그들은 ‘역사의 길’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바라만보아도 현기증이 이는 그 길을 따라 동굴교회도 만들고 그들만의 문화도 보존해왔다.

‘역사의 길’이 마침표를 찍는 다렌데 시는 살구가 익어가는 고장. 말라티아에서 서쪽으로 110㎞ 떨어진 다렌데의 토흐마 강 협곡은 래프팅과 트레킹으로 유명한 곳. 소문주바바 마을에서 협곡이 끝나는 쾨퓌뤼괴주까지 이어지는 트레일은 1.3㎞. 석회석 성분이 많아 뿌연 물이 흐르는 토흐마 강을 따라 좁은 협곡 안으로 들어가면 협곡 절벽 아래 만들어진 수영장이 나온다. 수영장의 물은 20m 길이의 절벽 동굴 속에서 솟아나는 용천수. 신경통 등에 효험이 좋아 몇 시간 수영을 하고 나면 몸이 가뿐해진다고 한다.

절벽에 철제빔을 세우고 목재데크로 만든 트레일은 풍경화 속으로 들어가는 신비의 문. 발 아래로 물거품을 일으키며 흐르는 강물을 따라 걷다보면 700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허물어진 성벽이 나온다. 수백 미터 높이의 깎아지른 협곡은 햇살에 젖어 분홍색으로 빛나고, 거친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는 공명현상을 일으켜 귀를 먹먹하게 한다.

트레일이 끝나는 쾨퓌뤼괴주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위치한 균프나르 폭포는 자연의 신비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낮은 돌산에서 쏟아지는 폭포의 높이는 40m. 우레 같은 굉음과 함께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폭포수가 수증기처럼 피어오른다.

물 한 방울이 기름보다 귀한 곳에서 쏟아지는 폭포수의 근원은 어디일까. 지하 깊은 곳에서 솟아난 용출수가 사암으로 이루어진 돌산의 동굴을 통해 흐르다 이곳에서 자유 낙하하는 것이리라. 폭포 옆의 깎아지른 절벽에서도 돌을 뚫고 흘러나오는 실폭포들이 이끼와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그린다. 살구색을 닮아 땅마저 노란 말라티아. 오랜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역사와 문화, 그리고 웅장한 자연과 순박한 인심의 말라티아가 드디어 그 신비의 베일을 벗고 있다.

말라티아(터키)=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