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되고 싶은 인간의 욕망 잠든 산… 세계 8대 불가사의 터키 넴루트 산
입력 2012-07-04 18:16
터키 남동부의 말라티아와 아디야만 주 경계에 위치한 넴루트(Nemrut) 산은 신이 되고픈 인간의 욕망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해발 2150m의 산 정상에 위치한 원추형의 돌무덤 주인공은 기원전 1세기에 콤마게네 왕국을 다스렸던 안티오쿠스 1세. 독일인 엔지니어 칼 세스터가 1881년 산 정상에서 조각상을 발견하기 전까지 그의 무덤은 2000년 가까이 잊혀져 있었다.
말라티아에서 출발해 타우르스 산맥의 주봉인 넴루트 산을 오르는 길은 절경의 연속이다. 미루나무 숲에 둘러싸인 양철지붕 마을과 당나귀에 짐을 싣고 가파른 산을 오르는 원주민의 모습도 이곳에서는 흔한 풍경화. 현기증이 일 정도로 가파른 산길을 지그재그로 오르고 또 오르면 고산준령과 광활한 평원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정상 아래 주차장에 도착한다.
넴루트 산의 주인은 바람이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거센 바람 탓에 거친 돌무더기 사이에서는 키 작은 고산식물들만 자라고 있다. 하지만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고산식물은 척박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을 피워 왕의 정원 역할을 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넴루트 산 유적은 콤마게네 왕국의 통치자 안티오쿠스 1세에 의해 만들어졌다. 자신이 신이라고 생각한 안티오쿠스 1세는 정상의 커다란 바윗덩어리를 부수고 동쪽과 서쪽에 신들과 악수하는 자신의 조각상을 비롯해 신들의 조각상, 사자상, 독수리상을 각각 7개 세웠다. 그리고 바윗덩어리를 주먹 크기로 쪼개 자신의 무덤으로 쓸 50m 높이의 고깔 모양 돌산을 만들었다.
높이가 8∼9m에 이르는 이 거대한 조각상들은 하나같이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안티오쿠스 1세는 비문에 “나 위대한 왕 안티오쿠스는 결코 파괴되지 않을 거대한 능과 모든 신들의 옥좌, 그리고 이곳에 오르는 길을 건설하게 했다. (중략) 나의 축복받은 생애가 끝나면 나는 이곳에서 영원한 잠에 빠질 것이며, 나의 영혼은 천국에 있을 것이다”고 새겼다.
하지만 신이 되고픈 과대망상증 환자의 꿈은 지진으로 인해 산산조각이 났다. 몸통에서 떨어져 나온 머리는 바닥을 뒹굴고 서쪽의 조각상은 아예 돌로 만든 의자마저 무너져 내려 폐허를 방불케 한다. 머리만 남은 연분홍색 조각상들이 지금은 역사에서 사라진 콤마게네 왕국을 내려다보는 모양새가 오히려 신비감을 더한다.
일찍이 천문학 지식이 풍부했던 콤마게네인들은 검은색 대리석으로 조각한 서쪽 사자상의 턱과 가슴 사이에 초승달을, 온몸에는 19개의 별과 화성, 목성, 토성을 상징하는 그리스 문자를 새겼다. 고고학자들은 이 천체의 상징이 기원전 62년 7월 7일을 나타낸다고 한다. 이날은 초승달이 사자좌에 들어가는 날로 안티오쿠스 1세가 로마 장군의 도움으로 왕위에 오른 날이다.
콤마게네인들은 거대한 조각상을 만들기 위해 연분홍색 돌은 이곳에서 30㎞ 떨어진 곳에서, 검은색 돌은 5㎞ 떨어진 곳에서 운반해왔다고 한다. 자동차도 오르기 힘든 가파른 산에 그들은 어떻게 이 거대한 돌을 끌고 왔을까. 터키인들이 이 유적을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이어 세계 8대 불가사의로 부르는 이유이다.
넴루트 산은 정상에서 맞는 해돋이와 해넘이가 장관이다. 아디야만 평원의 보랏빛 여명을 뚫고 불쑥 솟은 태양은 유프라테스 강의 지류들을 금빛으로 수놓는다. 말라티아 쪽으로 지는 해넘이도 감동적이다. 타우르스 산맥을 주유하던 태양이 고도를 낮출수록 첩첩이 포개진 능선은 시시각각 다른 느낌의 수묵화를 그린다.
동쪽에서 넴루트 산을 오르는 길에는 콤마게네 왕실의 여자들을 위한 무덤인 ‘검은 독수리 능’, 1m 길이의 돌 92개가 한 개의 큰 아치를 그리는 젠데레 다리, 콤마게네 왕국의 요새로 사용됐던 에스키 카흐타 성 등 볼거리가 많다. 해돋이를 보려면 넴루트 산 인근의 호텔에 숙박해야 한다.
넴루트 산까지는 말라티아에서 버스로 3시간30분, 샤늘르우르파에서 2시간30분 걸린다. 주차장에서 넴루트 산 정상까지는 걸어서 30분. 넴루트 산을 오르기 가장 좋은 때는 눈이 녹는 5∼10월. 한여름에도 정상의 날씨는 춥고 바람이 거세므로 보온에 신경 써야 한다.
아디야만(터키)=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