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신인식 (9) 시각장애인 최초 히말라야 6476m 메라피크 등정
입력 2012-07-04 18:12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익숙하지 않은 환경은 모두가 장벽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걸려 넘어질 수 있고 다칠 수도 있다. 가끔씩 만만치 않은 장벽도 만나게 되는데 그럴 때 그게 진짜 장벽이라고 받아들이고 주저앉으면 그 자리가 자신의 한계가 되어 버린다. 그게 장벽일 리 없다고 넘고 또 넘는 노력을 한다면 바로 그 자리가 도약대가 된다고 믿는다.
2006년 5월 헌법재판소가 안마사 자격증을 시각장애인에게만 주는 것이 위헌이라고 판결한 후 수많은 시각장애인이 길에 나앉게 될 상황이었다. 안마사 자격증은 시각장애인들의 유일한 생존권이었다. 절망감에 목숨을 끊는 시각장애인들이 생겨났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해 7월 2일부터 18일 동안 30여명의 시각장애인과 창원, 부산, 울산, 경주, 포항, 영천, 대구를 거쳐 서울까지 총 620㎞를 걸었다. 무더위 속에 발 여기저기에 물집이 생겨 터졌다.
“성경의 비유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어느 마을에 양 100마리를 갖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가난한 과부 집에 있는 한 마리의 양을 빼앗아 손님 접대를 했다면 어떻겠습니까. 양 100마리를 가진 사람의 욕심이 지나친 게 아니겠습니까. 시각장애인에게 안마사라는 직업은 한 마리의 양과 같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의 유일한 직업을 빼앗는 것입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시각장애인에게 ‘안마사’라는 직업이 어떤 가치인지 알렸다. 무척 힘들었지만 그해 8월 말, 안마사 자격 인정은 시각장애인에게만 해야 한다는 법이 마련됐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2008년 위헌 신청을 내는 사람들이 있었고, 현재 법적으로는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증이 허락되지만 실제로는 정안인들도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나님께서는 늘 나를 깨어있게 하셨다. 절망 속에 있는 사람들이 용기를 얻도록 ‘세상에 도전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의 생각은 늘 새로운 도전으로 차있다.
2008년 1월 세 명의 시각장애인이 시각장애인 최초로 히말라야 메라피크에 도전했다. 직접 오르지는 못했지만 나는 그들의 대장이 돼 등반 준비와 후원을 맡았다. 해발 6476m의 산을 오르기 위해 4개월간 피나는 연습을 하고 22일간의 대장정에 나섰다. 그 힘든 여정은 MBC에서 밀착 동행해 2008년 3월 MBC스페셜 ‘생애 최고의 약속’으로 방영된 바 있다.
우리는 왜 히말라야에 오르고자 했을까. 그것은 세상에 대한 도전, 미래에 대한 약속이었다. 준비는 만만치 않았다. 출발 전 기초체력 검사와 심폐기능 검사, 3개월에 걸친 산악훈련과 보름 동안 진행된 고소적응훈련 등을 받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그들은 도우미의 손, 자신의 소리와 감각에 의지해 어둠뿐인 설산을 올라가야 했다.
참가자 세 명 가운데 한 사람은 국군 하사관이었던 34세의 엄도영씨였다. 화마로 두 눈을 잃고 삶을 포기하려 했던 그였지만 사랑하는 약혼자 때문에 다시 용기를 냈다. 또 한 사람은 22세의 여대생이었다. 선천성 녹내장으로 태어난 이나영씨는 서서히 시력을 잃어 8세에는 완전 실명을 하게 되었는데 세상 사람들을 위한 봉사가 꿈이라고 했다. 마지막 한 사람은 전문 안마사로 일하는 이유성씨였다. 그도 시각장애인이었는데 사랑하는 아들까지 소아 안구암으로 두 눈을 잃게 되었다. 열두 살 난 아들이 어른이 되어 살아갈 세상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없는 곳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등반을 결심했다.
그들이 등정에 성공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보란 듯이 메라피크 정상에 우뚝 섰다. 몰아치는 칼바람, 뺨을 때리는 눈보라 속에 흐르던 눈물도 함께 얼어 버렸지만 가슴속에서는 감동의 화산이 폭발했다. 그들은 장애를 더 이상 핸디캡으로 여기지 않겠다고 했고, 정안인들은 시각장애인들의 잠재력을 깨달았다고 했다.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내 가슴에도 환희와 감사가 넘쳐났다.
정리=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