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이성규] 4월 23일, 5월 1일 가서명해놓고…
입력 2012-07-03 22:03
두 달여 전에 이미 한·일 정보보호협정에 가서명하고도 이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국민일보 3일자 1·3면 보도)에 대해 정부는 3일 “‘가서명’은 법적 효력이 없는 실무협상의 한 절차일 뿐”이라고 밝혔다. 또 “통상적으로 협정 가서명 단계에는 이를 공개하지 않는다”며 은폐할 의도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시계를 돌려보자. 정부는 2011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때는 처음 가서명한 이후 문구를 수정할 때마다 국회와 언론 등에 공개했다. 2008년 한·미 쇠고기협상 때는 가서명만으로도 효력이 있다며 국무회의 상정 절차도 무시한 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고시로 시행했다.
외교통상부는 올 상반기에만 ‘한·터키 FTA 협상 가서명 문안 공개’ 등 각국과 맺은 가서명 협정 사실을 7차례 보도자료로 배포했다.
정부 해명대로 가서명이 그렇게 의미 없는 절차에 불과하다면 그동안 정부는 확정되지도 않은 협정 내용을 갖고 이에 따른 기대 효과를 언급하며 국민들을 호도한 셈이 된다.
2006년 외교부가 펴낸 ‘알기 쉬운 조약업무’ 책자에도 가서명을 ‘상대국과의 교섭을 통해 양국 간 이해관계가 모두 조정되어 문안의 합의에 이르게 되면 조약 문안을 확정하는 것’이라고 기술돼 있다.
사실만 따져 보자. 정부는 4월 23일 일본 도쿄에서 한·일 정보보호협정에 가서명했다고 이날 밝혔다. 하지만 기자가 전날 밤 가서명된 날짜를 확인했을 때 국방부와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일치되게 5월 1일이라고 확인했다. 외교 관례상 가서명을 두 번 했더라도 최종 가서명 날짜로 인정하는 점에 비춰볼 때 정부가 하루 만에 말을 바꾼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특정 언론에 보도되자 ‘물타기’를 한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사고 있다.
이를 떠나 정부는 두 달여가 지난 지난달 26일 국무회의에 비공개 안건으로 상정해 처리했다. ‘밀실 처리’가 문제가 된 이후에도 법제처 심사까지 마친 협정문 전문을 공개하지 않다가 뒤늦게 전날 오후 외교부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가서명→법제처 심사→차관회의→국무회의 상정’이라는 정상적 절차와 비교해 봐도 정부의 석연치 않은 태도는 확연히 드러난다. 총리와 장관이 사과한다고 국민들이 정부의 ‘꼼수’를 이해할 것이라는 착각은 버려야 한다.
정치부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