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보보호협정 파문] 부처간 엇박자에 정무·정책라인 불협화음도 증폭
입력 2012-07-03 19:22
[이슈분석] 내부 의사소통도 안 되는 임기말 MB정부
한·일 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 보류 과정에서 드러난 청와대와 관련 부처 간 엇박자는 이명박 정부 내에 심각한 소통 부재 현상이 자리 잡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줬다. 그동안 정부 정책을 움켜쥐고 조율하던 청와대의 ‘컨트롤타워’ 기능이 크게 손상됐다는 평가와 함께 정권 말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정부 부처들의 ‘복지부동(伏地不動)’ 행태도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3일 ‘국방부가 5월 1일 협정안에 가서명했다’는 국민일보의 보도와 관련해 “신문을 보고 처음 알았다”고 언급했다.
다른 관계자 역시 “그런 구체적인 방법은 부처가 알아서 할 일이지 우리가 보고받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국방부가 독도 영유권, 위안부 문제 등 민감한 현안이 얽혀 있는 일본과 이 협정을 추진하면서 청와대에 ‘내용’만 알리고 ‘시기와 절차’는 사전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당초 일본과의 협상을 주도했던 국방부는 가서명까지 한 뒤 갑자기 외교통상부에 협정 추진 업무를 모두 위임했다. 법제처 심사 등 법률적 절차를 거치기 위해 외교부 역할이 필요했다고 설명하지만 5월 중순 협정 내용이 알려지면서 반대 여론이 일자 한 발 뒤로 빠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뒤늦게 협정을 떠안게 된 외교부는 청와대와 조율하며 국무회의의 ‘즉석 안건’ 처리 등을 실행했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의 중남미 순방기간에 이뤄졌고 국내에 남아 있던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이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정무라인 고위관계자는 “이 과정에 청와대 내부에서도 별다른 논의 절차 없이 일방통행처럼 일이 진행됐다”고 토로했다.
당·정 간 정책 조율 기능도 사라졌다. 실무 차원의 내용 설명은 새누리당에 전달됐지만, 고위 당·정 협의 등을 통한 논의는 수개월 동안 한번도 없었다. 친박근혜가 접수한 여당과의 소통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여론에 민감한 당과의 창구가 사실상 폐쇄되면서 이번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협정 체결이 보류된 뒤 청와대와 관련 부처들은 ‘네 탓 공방’까지 벌였다. 정부와 청와대 간 정책 혼선을 해결하기보다 책임 회피에 몰두하는 모양새가 빚어졌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작심한 듯 “정책 발표를 할 때는 정무적으로도 판단하라. 좋은 정책도 충분한 검토 없이 불쑥 내놓으면 오해받을 수 있다. 어떻게 발표할지도 면밀하게 신경 써서 결정하라”고 질타했다.
명지대 신율 교수는 “정부 내부의 의사소통 구조가 얼마나 꽉 막혔는지 한눈에 확인시켜준 사건”이라며 “서로 정책 방향 정리가 안 되는 바람에 일본과의 외교문제로 비화돼 국제적 망신을 당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1년 전이었다면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었겠느냐”면서 “국익보다 부처 이익이 먼저인 전형적인 공무원 근성이 야기한 결과”라고 꼬집기도 했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