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은 ‘국회의원 특권’ 정치 선진국과 비교해보니… 美 의원연금 세비서 적립

입력 2012-07-03 18:38


통합진보당 경선부정 사태와 국회의 늑장 개원을 계기로 국회의원의 특권을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민의 대표로 활동해야 할 의원들이 제 밥그릇 챙기기에만 골몰해 왔다는 비판이다. 대표적으로 국회의원이 되기만 하면 65세부터 매월 120만원을 받을 수 있는 현행 의원연금제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은 ‘방탄국회’를 양산하는 수단으로 인식되고 국회의원의 겸직 문제도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주요 선진국들은 국회의원의 특권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국회의원의 지위와 독립성을 보장하면서도 특권을 견제하려는 균형의식을 엿볼 수 있다.

◇선진국의 의원연금제도 어떻게 운용하나=미국 영국 등 의회 선진국들의 경우 의원 연금에 관한 법률이 마련돼 있다.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된 국회의원의 공로를 인정해 연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급 근거가 연금법이 아니다. 전·현직 국회의원 모임인 헌정회가 주축이 돼 65세 이상 회원들에게 ‘연로회원지원금’을 지급한다. ‘헌정회 육성법’을 통해 1988년부터 매월 20만원씩 지급하던 것을 점차 개정해 2010년에는 매월 120만원으로 인상했다.

문제는 지원금의 지급대상이나 지급액을 헌정회 정관에 맡겨둔다는 점이다. 별도의 법률을 제정하지 않고 헌정회에 국고를 전액 지원하는 방식이 되다 보니 국회의원의 지위에 관한 공론화 없이 ‘그들만의 리그’에서 국민의 혈세가 낭비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반면 선진국들은 국회의원 연금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법률을 통해 자격요건을 규정하고 있다. 연금이 전액 국고에서 지원되는 독일을 제외하면 의원들이 적립한 기여금으로 연금 재원을 마련해 합리적 수준에서 연금제도를 운용한다.

영국은 가산율에 따라서 세비의 5.9∼11.9%로 차등을 두고 있다. 프랑스와 미국은 의원뿐 아니라 의회가 기관기여금을 함께 적립한다. 프랑스는 재직 첫 해부터 15년까지는 세비의 15.7%, 그 이후로는 절반인 7.85%다. 의회가 의원 기여율의 2배를 기관기여금으로 부담한다. 미국은 의원이 세비의 1.3%를 기여금으로 내고 의회가 17.9%를 기관기여금으로 낸다. 독일은 예산이 모두 국고보조금이기 때문에 의원 기여금이 없다. 연금을 받으려면 6년 이상 재직해야 하며 67세 이상의 전직의원에게 연금이 지급된다.

주요국들은 국회의원들의 연금을 산출할 때 재직기간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눈여겨봐야 한다. 우리의 경우 재직기간에 대한 고려 없이 일괄적으로 매월 120만원이 지급돼왔기 때문에 퇴직 후 받는 연금의 의미보다 특혜로 인식된 측면이 크다.

일본의 경우에는 미국이나 유럽과는 사정이 다르다. 참의원(상원)이 2006년 2월 ‘국회의원 연금 폐지법’을 가결시켰기 때문이다. 법이 발효된 2006년 4월 이전 일본 의원들은 세비의 10%와 기말수당의 0.5%를 연금기여금으로 납부했지만 현재는 기여금이 없다. 재직 10년 미만 현직 의원은 납부금 총액에서 20% 감액한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받는다. 재직 10년 이상 현직의원은 재직 중 납부금액이 20% 삭감된 퇴직금과 현재 급여보다 15% 삭감된 연금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차등 지급과 재직기간, 기여율이 구체적으로 명시된 외국 사례와 달리 우리 정치권은 국민들의 정치 불신을 추수하려는 측면이 강하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현재 추진하는 연금제도 폐지안보다는 국회의원의 연금 지급에 대한 ‘제도 디자인’을 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복경 서강대학교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는 “다른 행정부의 장관들과 비교해서 국회의원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게 타당한지, 재직기간을 고려해 어떻게 차등 지급할 것인지가 구분되지 않고 일방적인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면 금지가 능사는 아니다=불체포특권의 경우에도 폐지 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다. 의원들이 사법당국의 수사망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한다는 폐지론자의 주장과 국회의원의 자유로운 입법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신중론자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민사사건에만 불체포특권을 인정하는 영국, 미국과 형사사건까지 모두 인정하는 독일, 프랑스로 나뉜다. 일본의 경우 체포에 대해서만 불체포특권을 보장하고 소추에 대해서는 규정하지 않기 때문에 회기 중이라도 불구속으로 형사소송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겸직 금지의 경우에도 특권적 시각에서만 바라보지 않고 국회의원의 지위와 자격을 중시하는 측면이 강하다. 미국연방헌법 제1조 6항 2호는 상·하 양원 모두에게 임기 중 다른 공직에 취임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공직 이외에도 겸직을 포괄적으로 제한한다. 하원규칙 제47조는 “의원은 연봉 총액의 15%를 초과하는 세비 외 수입을 얻을 수 없다”고 명시해 사실상 겸직이 어렵다. 반면 영국은 의원의 겸직을 금지하지 않는다. 대신 이해관계와 관련된 장관직에 취임하거나 관련된 위원회의 위원으로 선임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일본은 공직을 제외한 다른 직에 대한 겸직제한 규정이 없다. 대신 ‘정치윤리강령’에서 연간 세비의 절반을 초과하는 수입이 있을 경우 신고를 의무화하는 등 겸직이 안 되는 의회 내 직책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미국을 제외하면 대체로 공직 이외에는 특별한 제한 규정을 두지 않으면서도 영리목적의 직업활동으로 세비의 일정액 이상을 받을 경우 신고하는 보완책을 마련하고 있다. 국회의원이 개인사업상의 관계로 본연의 활동에 지장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