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고객 ‘계열사 몰아주기’ 뿌리 뽑는다

입력 2012-07-03 18:45


지난 3월 퇴직한 김모(57)씨는 퇴직금을 펀드에 넣어두고 매월 연금처럼 수익금을 받는 상품에 마음이 끌렸다. 직장을 다닐 때 적립식 펀드에 투자하기도 했던 김씨는 큰 고민 없이 평소 거래하던 A은행을 찾았다. 하지만 헛걸음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얘기했는데도 창구 직원은 A은행 계열사에서 운용하는 펀드만 권유했다. 김씨는 “원하는 상품이 무엇인지 콕 집어 얘기를 했는데도 자꾸 딴소리를 해서 황당했다”고 말했다.

은행·증권·보험사 등 펀드 판매사들이 계열사 상품에 고객을 몰아주는 관행이 도를 넘고 있다. 판매하는 펀드의 96%가 계열사 상품인 곳까지 있다. 급기야 금융당국이 ‘몰아주기 금지’라는 칼을 빼들었다.

3일 금융감독원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기준으로 펀드 판매 상위 10개 금융회사의 계열사 펀드 판매 비중은 45.84%에 이르렀다. 펀드 상품을 10개 팔면 4∼5개는 계열사 상품인 셈이다. 계열사 펀드 판매 비중은 2010년 12월 말 51.7%에서 지난해 12월 말 45.78%로 크게 낮아졌다가 다시 증가하는 추세다.

펀드 몰아주기는 고질병이다. 각 펀드 판매회사는 창구 직원이 계열사 상품을 많이 팔면 인사고과에서 높은 점수를 부여하거나 상여금을 준다. 창구 직원들은 계열사 상품을 더 우수한 것처럼 포장하거나 아예 다른 상품을 소개조차 하지 않기도 한다.

미래에셋증권은 계열사 펀드 판매 비중이 72.0%로 펀드 판매 상위 10개사 가운데 가장 높았다. 미래에셋증권은 2010년 12월 말 79.4%, 지난해 말 73.6% 등 계열사 펀드 판매 비중이 계속 70%대다.

4대 금융지주사의 은행들도 계열사 펀드 판매 비중이 증가했다. 국민은행은 2010년 12월 말 45.7%에서 지난해 12월 말 52.8%, 올해 4월 말 54.6%까지 훌쩍 뛰었다. 하나은행은 2010년 12월 말 41.2%에서 4월 말 44.7%로, 우리은행은 같은 기간 41.8%에서 42.6%로 상승했다. 신한은행은 72.7%에서 68.3%로 비중은 하락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대형 판매사는 아니지만 삼성화재는 삼성자산운용 상품 판매 비중이 지난 4월 말 96.4%에 이른다. 미래에셋생명은 계열사 판매 비중이 무려 95.3%다.

이에 따라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은 계열 자산운용사 펀드를 판매한 직원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관행을 전면금지하고, 계열사 펀드 상품 우대행위는 불건전 영업행위로 분류해 규제하기로 했다. 금융위는 4일 열리는 13차 정례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금융투자업 규정 개정안’을 처리할 계획이다.

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