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사라예보의 기적’ 이에리사 의원 “학교체육 죽어가… 체육관 만드는 정책 추진할 것”

입력 2012-07-03 19:28


19대 국회 개원 전부터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의원들 자격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민주통합당 임수경 의원도 문제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하지만 이번 국회 비례대표 의원 중엔 눈길을 끄는 참신한 인물도 적지 않다.

새누리당 이에리사(58) 의원은 39년 전 국제무대에 ‘소녀등과’한 스포츠 스타였다. 1973년 19세에 세계탁구선수권 대회에 나가 19게임을 전승하며 단체전 우승을 이끌었다. 우리 구기 역사상 첫 세계 제패였다. ‘사라예보의 기적’이라 불리는 쾌거 이후 전국의 탁구장은 청소년들로 북적였다. 그는 전무후무한 전국종합선수권대회 7연패 위업을 달성하고 78년 은퇴한 뒤 체육학 교수,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2005년 태릉선수촌 촌장을 역임한 뒤 용인대 교수로 복귀했다가 여당 공천을 받아 여의도에 입성했다. 엘리트 체육인이 국회의원 배지를 단 것은 39년 만의 일이다. 사라예보의 기적이 있었던 그해 9대 총선에서 고려대 역도부 출신 황호동(1936∼2010)씨가 전남 강진에서 당선된 이후 처음이다.

이 의원은 지난달 27일 25세가 되지 않은 운동선수·연예인이 주류 방송광고에 출연하지 못하도록 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개원 협상이 지지부진해 국회가 열리지 못하던 때 그래도 부지런히 움직이는 의원이 있구나 싶어 인터뷰를 청했다. 의원회관 775호로 이 의원을 찾아간 지난달 29일은 마침 개원 협상이 타결돼 의원실이 분주하던 날이었다. 이 의원은 선수시절 하던 숏커트 머리에 짙은 색 정장 차림이었다.

-개원이 늦어졌는데 초선 의원으로서 불만이 많겠습니다.

“글쎄요, 의정활동 준비 때문에 이리저리 바쁘게 보내느라 특별한 느낌은 없습니다.”

-국회의원 첫 월급을 몽땅 반납했는데, 기분이 언짢겠네요.

“총선 공약이었으니 당연히 지켜야죠. 다만 ‘무노동 무임금’은 어폐가 있고 ‘무개원 무세비’란 용어가 맞을 것 같습니다.”

국민건강증진법 이야기로 들어가자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의원이 되기 전부터 생각했던 일이었는데 반향이 생각보다 크더군요. 어떤 의원은 ‘홈런’이라 격려해주더군요.”

-평소 후배 체육인들을 아들딸처럼 아끼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후배들의 활동에 제동을 거는 법을 추진하는 이유는.

“주류광고에서 청소년들이 동일시하기 쉬운 모델들을 쓰고 있는데 청소년 사이에 음주를 미화하는 문화가 조성될 수 있습니다. 미국이나 영국도 25세 미만 유명인의 주류 방송광고 출연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김연아 선수가 직접 타격을 받을 텐데.

“작은 마음의 김연아가 아닙니다. 충분히 옳고 그름을 압니다. 스스로는 거절 못할 일을 대신해줘 속으로는 오히려 후련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태릉선수촌장으로 있을 때 김 선수를 데리고 있었지만 특별하게 대우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여자선수들의 기가 죽기 때문이죠. 이번 일도 김연아가 표적은 아닙니다.”

-의정활동 계획은.

“의정계획서에 ‘공부하는 운동선수, 운동하는 학생’이라고 썼습니다. 체격은 크지만 체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을 위해 체육이 필요하고, 운동선수도 함께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학교 체육부가 죽어갑니다. 생활체육 활성화를 통한 엘리트 스포츠인 양성은 미흡합니다. 아마추어 스포츠 저변이 무너지면 세계대회에서 좋은 성적 내기가 어렵습니다. 학교 안에 체육관 만드는 정책을 꼭 추진해보고 싶습니다.”

-공천 과정은.

“새누리당 인재영입분과위에서 전화가 와 만났습니다. 전에도 몇 번 기회가 있었지만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정치는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태릉선수촌장을 3년 반 하면서 체육 행정이나 예산 등을 알게 됐습니다. 체육이 비체육인에게 끌려 다닌다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세계 10위권 스포츠 국가이면서 체육 관련 예산은 0.01%가 안 됩니다. 법안 많이 내는 것은 신경을 안 쓰려 합니다. 체육계 여론을 충분히 수렴해서 현장과 연결되는 활동을 하겠습니다.”

사무실은 단출했다. 벽에는 한시를 쓴 동양화 액자 한 점만 있을 뿐 선수시절 사진 한 장도 걸려 있지 않았다. 이유를 물었더니 “나갈 때 짐이 가볍도록 원래 장식을 많이 하지 않는다. 선수촌장 때도 그랬다”고 말했다. 썰렁한 벽이 사진 배경에 적당치 않아 샛강 쪽으로 나 있는 창문가에서 사진을 찍자고 권했다. 밖의 보좌진들이 보는 게 쑥스럽다며 슬며시 문을 닫고는 돌아와 포즈를 취했다.

사라예보와 탁구가 화제에 오르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열성적으로 설명했고,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유고는 당시 적성국이었는데.

“처음 사라예보에 내렸을 때는 무척 긴장했었죠. 한국인이라곤 온통 김일성 배지 단 사람들만 돌아다니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내다 보니 사랑이 넘치고 평화를 존중하는 나라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음식도 입에 맞아 돌아올 때는 살이 쪄 왔죠. 북한은 당시 불참했습니다. 선수시절 북한선수랑 7∼8차례 겨뤘는데 한 번도 안 졌습니다. 우승한 뒤 카퍼레이드를 한 달간이나 전국을 돌며 했습니다. 국민훈장도 받았고요. 하지만 격려금은 협회에서 준 200달러가 전부였습니다.”

-탁구를 시작한 계기는.

“초등학교 때였습니다. 아버지의 초임 대덕군수 시절 넓은 일본식 관사 뒤뜰에 고물 탁구대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언니 오빠가 탁구를 치는 걸 보며 따라하게 됐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핸드볼, 육상 선수로도 뛰었습니다. 원래 뛰고 움직이는 걸 좋아했습니다.”

-초등 6년 때 전국 제패, 중 3때 국가대표, 19세에 세계를 정복했는데 비결은.

“팔이 빠지도록 드라이브 연습을 했습니다. 하루 1000개 드라이브를 연속 성공시키도록 연습했습니다. 실패하면 처음부터 다시 했죠. 랠리로는 2000개입니다. 같은 폼으로 구질과 타이밍을 달리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비결이라면 최고의 노력과 연습입니다. 지는 게 두려워 항상 남보다 더 연습했습니다.”

-‘에리사’라는 이름은 당시로는 파격적인데.

“52년 취임한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에서 딴 이름입니다. 3남5녀의 막내딸인데, 아버지랑 18살 차였던 큰언니와 아버지께서 딸도 많고 하니 특이하게 지어보자고 상의해서 나온 이름이랍니다. 학교 다닐 때 넉 자 이름이 창피해서 명찰을 주머니에 넣고 달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탁구의 여왕’이 될 운명을 예견한 이름이 됐네요.

“하하하.”

-결혼 계획은.

“이 나이에도 그런 질문 받아야 합니까. 껄껄껄.”

-신앙인으로 아는데.

“선수 때는 그저 처치맨이었습니다. 시간이 나면 좋은 말 들으러 교회에 갔죠. 88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양영자 선수를 친딸 같이 챙겨주던 사랑의교회 옥한흠 목사님과 자주 만나게 되면서 하나님을 받아들였습니다. 당시 서초동 교회 부근에 탁구 선수와 지도자들 집이 모여 있었습니다. 옥 목사님은 태릉선수촌에도 와서 기도를 해주는 등 생전 각별히 탁구 선수들을 아꼈습니다.”

-탁구와 정치의 유사점이나 차이점이 있다면.

“예측하기 어렵고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점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아니면 말고 식 발언은 체육인으로서 이해가 안 됩니다. 스포츠에서는 아니면 말고가 상대 선수를 은퇴시키거나 죽이기도 합니다. 룰을 지키며 정정당당하게 승부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정치를 하고 싶습니다.”

-정치생활 끝낸 뒤 계획은.

“특별한 건 없습니다. 후회나 아쉬움 없이 태릉선수촌을 나왔듯이, 4년간 체육인 몫을 감당한 뒤 홀가분하게 나오고 싶습니다. 정치인이지만 정치인 같지 않게 4년을 보내고 싶습니다.”

만난사람=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