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오경아] 걷기는 즐겁다
입력 2012-07-03 18:32
오랜만에 산에 올랐다. 길이 없을 것 같은 산속이지만 먼저 지나간 이들의 발자국이 보인다. 땅이 굳어져 만들어진 길이 나무와 바위 사이로 구불거린다. 길은 어렴풋이 보이다가 모퉁이에서 문득 사라지고, 사라졌던 길이 어느새 나무 사이에 나타난다. 발걸음이 어느 때보다 느릴 수밖에 없다.
길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산길처럼 구불어지고 휘어진 느린 길이다. 또 하나는 목적지를 향해 최단시간에 도착해야 하는 빠른 길이다. 후자의 길은 빠르고 안전한 것을 가장 큰 목적으로 삼는다. 그래서 가능하면 흙 그대로가 아니라 딱딱한 것으로 포장한다. 구불거리는 길은 펴서 똑바로 뻗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다.
물론 이런 길을 사람들이 편하게 걷자고 만들지는 않는다. 자동차처럼 빨리 갈 수 있는 교통수단이 이용한다. 사람은 거기에 수동적으로 타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는 이런 길에 워낙 익숙하면서도 조금씩 지쳐간다. 목적이 너무 뚜렷하니 그 목적 이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다. 그저 목표 지점만을 향해 맹렬히 달리니 그 여정이 버겁고 힘들다.
그런데 시골의 구불거리는 길은 다르다. 사람의 발로만 걸을 수 있게 만들어졌으니 속도가 더디다. 게다가 직선으로 뻗어있지 않아 휘어졌으니 멀고도 길다. 이 느린 길에 숨 가쁜 목적을 담을 수가 없다. 때로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로 정해진 방향도 없이 그 길을 걷고 싶어지고, 그리고 걷다 보면 자연이라는 풍경 속에 내가 꽉 차게 들어가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게 굽은 길의 힘이자 매력이다.
두 개의 길 중, 나는 지금 어떤 길을 가고 있고 있을까. 매일 아침, 천천히 가자고 가슴은 간절히 주문을 하는데도 머리는 어느덧 빠른 길을 먼저 잡는다. “얼마나 빨리 도착할 수 있을까?” “어떻게 가야 다른 이보다 조금이라도 먼저 갈 수 있을까?” 더 없이 마음이 조급해져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고 작은 일에도 움찔움찔 덜컹거린다. 목적이 있을 뿐 길을 걷는 즐거움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모든 길에는 어디론가 가야 할 목적지가 있다. 하지만 가끔은 그 목적을 잠시 젖혀두고 가는 길 자체를 즐기는 것은 어떨까. 너무 빨리 가느라, 목적지만 보느라 지금까지 느끼지 못한 걷기의 즐거움을 느껴 보자. 즐거움은 빠름이 아니라 느긋하게 가슴 밑까지 나를 내려놓게 하는 느림에서 온다.
오경아(가든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