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보협정 가서명] 두달 동안 의도적 은폐 드러나… 재추진 물건너 갈듯
입력 2012-07-03 05:27
정부는 5월 1일 한·일 정보보호협정에 가서명한 뒤 두 달여 동안 이 사실도 비공개로 일관했다. 국회 상임위원회가 구성되지 않아 보고할 데가 마땅치 않았다고 해명하지만 여야 정책위의장에게 설명하는 자리에서조차 이를 알리지 않은 건 ‘가서명→법제처 심사→차관회의→국무회의 상정’의 정상적 절차를 무시하려는 의도가 애초부터 깔려 있었기 때문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처럼 밀실처리 파문에다 청와대와 관련 부처 간 ‘네 탓’ 공방까지 불거지면서 협정 체결은 사실상 물 건너간 게 아니냐는 말이 정치권에서 흘러나온다.
◇정부, 정상 절차 밟을 의도 있었나=외교통상부가 2006년 펴낸 ‘알기 쉬운 조약업무’에 따르면 협정 체결을 위해서는 우선 가서명된 협정문의 심사를 법제처에 맡겨야 한다. 심사 결과가 나오더라도 차관회의 등을 감안하면 최소 2주가 소요된다고 적혀 있다. 정부가 가서명 사실을 국회에 알리지 않은 것은 이 사실이 알려질 경우 법제처 심사와 이후 차관회의 일정 등을 차례로 공개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정부는 지난달 22일 법제처 심사 결과가 나온 지 4일 만에 차관회의 없이 비공개 안건으로 국무회의에 이를 상정, 처리했다.
정부는 또 가서명된 협정은 추가 협상으로 그 내용이 언제든 바뀔 수 있어 이를 알리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고 해명하지만 결과적으로 5월 1일 가서명된 협정은 지금까지 단 한 글자도 바뀌지 않았다. 정부 당국자는 “이번 협정 내용은 기존 다른 국가와 맺은 정보보호협정과 큰 차이가 없어 협정문안 조율에 일본과 큰 이견이 없었다”고 밝힌 점도 추가 협상은 핑계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결과적으로 주무부처인 국방부가 실무협상을 완성하고, 외교부가 바통을 넘겨받아 법제처 심사 등 국무회의 상정 절차 준비에 들어가면서 두 부처가 암묵적으로 밀실 처리를 염두에 뒀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재추진 물 건너가나=청와대와 정부는 여전히 협정의 상세 내용을 국회에 설명한 뒤 남은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야권뿐 아니라 여당까지 반대 기류를 보이고 있어 국회 논의 과정에서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특히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캠프 가동 등으로 여야의 대권 레이스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문제가 대선 쟁점으로 비화되는 양상이다. 민주통합당은 벌써부터 대여 공세의 호재로 이용할 생각임을 분명히 하고 있고, 새누리당도 ‘협정 체결=친일’이라는 프레임을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
전날 김황식 국무총리와 관련 장관들의 해임을 요구했던 민주당은 2일 협정 폐기를 주장했다. “과거사와 안보는 별개 문제”라고 했다가 반일(反日) 여론이 심상치 않자 협정 체결 보류를 요구했던 새누리당에서도 “차기 정부로 넘기라”는 목소리가 커지는 양상이다. 청와대는 “사안 자체를 철회하긴 어렵다”며 ‘국회 설명 후 예정대로 서명’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 일각에서는 현 정부 임기 내에 협정이 체결되긴 힘들 것 같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친이명박계의 몰락으로 여당 내에서조차 변변한 우군이 없는 상황에서 국회의 강력한 반대를 뚫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신창호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