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피의자 호송 도맡아온 경찰 ‘부글부글’… “檢 심부름 하느라 제 할일 못한다”
입력 2012-07-02 22:02
지난달 24일 오전 1시쯤 만취 상태로 음식점에서 행패를 부린 일행 8명이 서울 소재 한 경찰서에 잡혀 들어왔다. 그러나 당시 형사당직팀에 남아 있는 경찰관은 2명뿐이었다. 원래 한 팀은 팀장을 포함해 5명으로 구성되는데 3명이 관내 검찰청에서 조사받던 피의자를 구치소에 입감시키는 데 차출됐기 때문이었다. 당시 현장에 있던 경찰관은 “강력팀 형사의 지원을 받아 경찰서 안에서 난동 부리던 취객들을 겨우 제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검찰 사건 피의자 호송 업무 때문에 경찰이 쫓던 범인을 놓친 경우도 있다. 지난 1월 19일 밤 울산시내에서 강도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관들이 용의자를 잡기 위해 작전을 수행하던 중 부산지검에서 연락이 왔다. 검찰이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된 A씨를 검찰로 호송하라는 지시였다. 경찰은 작전을 멈추고 급히 A씨를 검찰에 넘겼으나 강도 사건 용의자는 놓쳤다.
지난 1월 20일 강원도 B경찰서는 영월지청의 지휘를 받아 공주치료감호소에 수감돼 있던 박모(43)씨를 영월교도소로 호송했다. 공주에서 영월까지는 승용차로 왕복 7시간이나 걸리기 때문에 호송을 맡은 경찰관들은 그날 업무에서 제외됐다. 한 경찰관은 “우리 경찰서에서 처리한 사건도 아니기 때문에 박씨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데 갑자기 도주하거나 자해라도 하면 전부 우리 책임 아니냐”고 토로했다.
최근 논란이 된 검찰의 호송·인치 지휘에 대해 경찰은 오래전부터 불만이 쌓여 있었다. 호송·인치는 체포한 피의자를 유치장이나 구치소로 옮기는 일을 말한다. 그동안은 검찰 사건 피의자 호송·인치 업무도 경찰이 도맡아 왔다.
서울시내 경찰서에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검찰이 직접 수사한 사건 피의자 호송·인치는 검찰이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검찰이 경찰에게 심부름을 너무 시킨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경찰관은 “우리 돈까지 써가면서 남의 일을 해 주는 건 너무 한 것 아니냐”며 “검찰이 호송을 못 하겠다고 한다면 경찰에 호송수당이라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호송·인치 업무를 할 차량과 인력이 없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호송·인치를 하려면 인력과 장비 등이 추가로 소요되기 때문에 관계부처 협의와 관련 법 근거까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경찰이 검찰과의 갈등 때문에 늘 해오던 일까지 고의적으로 거부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국무총리실은 당초 두 기관에 지난달까지 호송·인치 관련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라고 권고했지만 양측 입장차가 커 이미 시한을 넘긴 상태다. 경찰은 당초 MOU가 체결되지 않으면 호송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지만 이달 초 다시 수사협의회를 갖기로 하면서 당분간 호송 지원을 계속하기로 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