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보보호협정 파문] 재추진 동력 사실상 소멸… 국회서 폐기수순 밟을 듯

입력 2012-07-02 19:14


공식 서명시간 10분을 앞두고 전격 연기된 한·일 정보보호협정의 운명이 정부에서 국회로 넘어가게 됐다. 하지만 밀실처리 파문에다 청와대와 정부 부처 간 ‘네 탓 공방’까지 불거지면서 협정 체결은 사실상 물 건너 간 게 아니냐는 말이 정치권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는 여전히 협정의 상세 내용을 국회에 설명한 뒤 남은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야권뿐 아니라 여당까지 반대 기류를 보이고 있어 국회 논의 과정에서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특히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캠프 가동 등으로 여야의 대권 레이스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문제가 대선 쟁점으로 비화되는 양상이다. 민주통합당은 벌써부터 대여공세의 호재로 이용할 생각임을 분명히 하고 있고, 새누리당도 ‘협정 체결=친일’이라는 프레임을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

전날 김황식 국무총리와 관련 장관들의 해임을 요구했던 민주당은 2일 더욱 칼날을 세웠다. 이해찬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서 잇따라 협정 폐기를 주장했고, 추미애 최고위원은 “정보협정을 넘어 군수지원협정까지 (일본과) 맺어진다면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위대가 동해상에 출몰하는 것도 막을 수 없다. 협정을 폐기하지 않으면 더 큰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가세했다. 우상호 최고위원은 “국회 차원에서 청문회를 열어 (밀실처리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색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합진보당도 이정미 대변인 논평을 통해 “국가 안보에 관한 조약 체결은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헌법 조항을 정부 스스로 위반했다”고 비판했다.

“과거사와 안보는 별개 문제”라고 했다가 반일(反日)여론이 심상치 않자 협정 체결 보류를 요구했던 새누리당에서도 “차기 정부로 넘기라”는 목소리가 커지는 양상이다. 박 전 위원장은 19대 국회 개원식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협정) 절차와 과정이 제대로 되지 않아 매우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치권 반대 기류가 확산되자 청와대와 정부는 곤혹스러운 모습이다. 일단 청와대는 “사안 자체를 철회하긴 어렵다”며 ‘국회 설명 후 예정대로 서명’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은 수석비서관회의 브리핑을 통해 “현재 (협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언급했다. 다른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우리가 손해 볼 게 하나도 없다. 정보는 우리가 주고 싶은 것만 주면 되고 오히려 일본이 대북정보를 주고 싶어하는데 왜 반대하는지 모르겠다”며 정치권 움직임에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나 정부 일각에서는 현 정부 임기 내에 협정이 체결되긴 힘들 것 같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친이명박계의 몰락으로 여당 내에서조차 변변한 우군이 없는 상황에서 국회의 강력한 반대를 뚫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